[재미있는 과학] 팔방미인 영양소 `아미노산`

신약개발 위한 `약방의 감초` 간염·위궤양 치료제로 널리 쓰여
식품첨가제·발효제로 사용 단맛·쓴맛 등 다양한 맛 낼수 있어

아미노산 하면 우선 필수 영양소 중 하나라는 사실이 떠오르고, 단백질의 기본 구성 단위라는 것도 연이어 생각난다. 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근육을 만들기 위해 먹는 아미노산보충제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미노산이 최근 각광받고 있는 생명공학(BT)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신약 개발의 주요 원료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아미노산을 신약 개발에 사용하기 위한 카이럴(Chiral) 기술에 대해 아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빵 발효제나 머리 염색제 등에도 아미노산은 활용된다. 아미노산을 신약 원료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카이럴 기술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각광받고 있는 BT 산업의 많은 부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아미노산은 크게 네 가지 기능을 갖고 있는데 그중 가장 주목할 기능이 바로 신약 개발과 관련 있는 `생리 기능`이다. 글루타민, 히스티딘 등의 아미노산이 간염이나 위궤양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으며, 페닐알라닌 아미노산은 항바이러스제와 항생제 원료로 사용된다. DOPA 아미노산은 파킨슨병 치료제에, 시스테인은 백혈구 감소증에, 아스파라긴산은 심장과 간 질환에 각각 사용된다.

아미노산은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있지만 인공적으로 화학 합성해 만들 수도 있는데 이 중 화학 합성을 통해 만든 아미노산이 신약 개발에 주로 사용된다.

화학 합성으로 아미노산을 만들면 50대50의 비율로 L-형과 D-형의 두 이성질체가 좌우로 붙어 있는 라세미체를 얻을 수 있다. L-형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반면 D-형에는 약리작용이 있다.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아미노산은 주로 L-형이며 신약 물질로 주로 사용되는 건 D-형이다.

아미노산의 또 다른 친숙한 기능은 바로 `영양 기능`이다. L-형 이성질체는 영양 기능이 있으므로 환자용 아미노산 수액, 영양제, 피로회복제 등으로 사용된다. 스포츠드링크, 건강식품에도 아미노산이 사용되고 화장품, 사료첨가제, 장기보존액 원료로서의 아미노산 수요도 많다.

아미노산의 세 번째 기능인 `반응성`을 이용하면 아미노산을 빵의 발효제, 계면활성제, 머리 염색제, 제초제, 항곰팡이제 등으로 개발할 수 있다. 생분해 수지 원료와 첨단 바이오 소재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아미노산은 단맛, 신맛, 쓴맛 등 다양한 맛을 낼 수 있어 식품첨가제로 사용되기도 한다.

아미노산을 의약품으로 바꿀 때 문제는 화학 합성 아미노산의 경우 한쪽은 효능을 가진 반면 다른 한쪽은 독성을 갖거나 무효능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데 있다. 무턱대고 화학 합성 아미노산을 사용할 경우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인공감미료인 아스파탐의 한 이성질체는 설탕보다 160배 정도 단맛이 나지만 다른 이성질체는 맛이 쓰다.



신경안정제인 탈리도마이드의 경우 R-이성질체는 좋은 약리 활성을 나타내지만 L-이성질체의 경우 임신부가 복용하면 태아 기형을 유발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해 1950년대 말 유럽 판매가 금지됐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게 바로 카이럴 기술이다. 카이럴 기술을 제대로 알려면 먼저 `카이럴`이란 단어부터 이해해야 한다.

카이럴은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겹칠 수 없는 거울상의 관계에 있음을 비유하는 그리스어로 손을 의미한다. 더 쉽게 말하면 거울에 좌우가 바뀌어 비치는 것처럼, 데칼코마니를 하면 똑같은 물감을 사용해도 좌우가 반대인 모양이 나란히 붙어 있는 것처럼 존재하는 형상을 의미한다.

화학 합성 아미노산의 경우 카이럴 구조를 갖게 된다. 왼쪽의 L-형 이성질체와 오른쪽의 D-형 이성질체는 분자식이나 분자량이 똑같지만 성질은 판이하게 다르다.

카이럴 기술은 L체와 D체라는 두 이성질체가 붙어 있는 라세미체에서 좋은 효능을 가진 이성질체만 분리하거나, 무효능 또는 독성을 지닌 이성체를 좋은 효능을 가진 이성질체로 전환하는 기술이다.

현재 세계 의약품 중 70%가량이 카이럴 기술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는 신약 중 카이럴 의약품 비중이 무려 80~90%에 달한다. 카이럴 의약품 시장은 매년 13% 이상 성장하며 2012년 예상 시장 규모가 295억달러(약 35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카이럴 기술은 199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면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FDA는 기존 라세미체 약물을 카이럴 기술을 이용해 단일이성체 약물로 바꿔 개발할 경우 의약품의 독점 판매기간을 기존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해 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단일이성체 약물의 경우 부작용이 더 적고 약효가 더 뛰어나기 때문이다.

신약 개발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카이럴 기술의 장점이다. 최근 다국적 제약사들은 신약 개발에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약 개발 성공 가능성도 매우 낮은 편이다. 하지만 저독성 또는 무독성으로 판명된 중간물질을 이용해 카이럴 기술로 유도물질을 개발하면 효능이 좋고 독성이 없는 신규 물질을 저렴하게 개발할 수 있다.

국내 바이오 기업들도 카이럴 기술을 이용한 아미노산 공업에 뛰어들고 있다.

김관묵 이화여대 나노과학부 교수는 산업적 잠재력이 뛰어난 아미노산 합성 기술을 개발해 바이오기업 아미노로직스와 손잡고 아미노산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기존 효소법은 생산 가능한 아미노산 종류가 제한돼 있고 비용이 많이 들었으나 개발 기술을 활용하면 모든 종류의 아미노산을 낮은 가격에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카이럴 기술을 이용하면 비단 아미노산뿐만 아니라 다양한 비대칭 화합물, 카이럴 화합물 등 신약 개발에 필요한 바이오 소재를 생산할 수 있다.

황금알을 낳는 세계 바이오 소재 시장 선점을 위해 다국적 바이오 기업들은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스위스 론자는 바이오 소재 분야가 전체 매출의 39%만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에서 작년 68억2500만달러(약 7조9000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네덜란드 정밀화학 전문업체 DSM, 독일 화학소재 업체 에보닉, 미국 원료의약품 제조업체 캠브렉스를 비롯한 많은 유럽ㆍ미국 바이오 기업이 바이오 소재에 대한 연구와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SK생명과학, 유한양행 등 국내 기업들도 카이럴 기술을 이용해 바이오 소재를 생산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그 기반이 취약한 편이다. 카이럴 기술을 제대로 도입해 활용하는 회사 수가 적고 인도, 중국과의 경쟁도 버거운 상황이다. 하지만 기술력과 서비스 측면에서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