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건강] 헬리코박터균 "한국서 사는 게 너무 좋아"
찌개로 대표되는 문화탓…국민 75%에서 감염 보여
동맥경화증도 유발…감염자가 담배 피우면 위암 위험 11배 높아져
발효유ㆍ녹차ㆍ브로콜리 예방 효과
보글보글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식탁에 오른 된장찌개. 숟가락을 든 가족 4명의 손이 한데 달려든다. 몇 번이고 찌개로 달려드는 여러 숟가락…. 이들 타액이 찌개에 합류된다. 나는 이런 풍경을 좋아한다. 내가 가족들 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 체내에서 6만년 이상 기생하며 적응해온 세균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H. pylori)이다. 현재 세계 인구 절반의 위 속에 내가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동 문화가 잘 발달된 대한민국에는 내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잘 조성돼 있다. 국민 75%에서 감염률을 보일 정도로 말이다.
◆ 염증ㆍ궤양ㆍ위암 발병 요인, 나보고 영악하대요
= 나는 나선형으로 된 박테리아로 위 점막 상피세포 간 접합부에 서식한다. 우레아제라는 효소를 만들어 위 점막에 있는 극미량의 요소를 분해하고, 알칼리성인 암모니아로 만들어서 주위 환경을 중화시키는데 이것이 내가 그 독한 위산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비법이다.
나에게는 편모가 3~4개 있어 위 점막을 자유롭게 뚫고 지나갈 수도 있다. 내가 마구 위 점막을 헤집고 다니면 위장에 구멍이 나게 된다. 이런 `영악한` 성향이 소화기관에 염증이나 궤양을 일으킨다. 보고에 따르면 내가 감염돼 있는 사람 중 65%는 위염, 10~20%는 소화성 궤양에 걸린다.
위궤양 환자 중 60~80%, 십이지장궤양 환자 중 90~95%에서 내가 발견된다는 보고도 있다.
오죽했으면 미국 국립보건원이 나를 소화성궤양 발생인자로 규정했고,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기관에서도 위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하여 발암인자라고 규정했을까. 그렇다고 내가 모든 사람들에게 질환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여러 다른 `친구`들이 도와줘야 한다. 가령 나에게 감염돼 있는 사람이 담배를 피우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에 비해 위암 발병 위험은 11배까지 증가한다.
◆ `이상한 헬리코박터 증후군`을 아시나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 나는 흔히 소화질환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말씀이다. 미국 `헬리코박터` 저널에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나는 혈액 질환과 동맥경화증을 일으키는 데도 일조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피로를 몰고 오기도 하고, 두드러기를 유발하기도 한다. 철분이 몸에 흡수되는 것을 막아 빈혈을 일으키고, 내가 분비한 염증 매개 물질이 성장호르몬 기능을 저하시켜 성장기 어린이에게 저신장을 유발하거나 남성 정자를 공격해 불임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때문에 미국 질병통제센터(CDC)는 나로 인한 다양한 증상들을 이름하여 `이상한 헬리코박터 증후군`으로 명하기도 했다.
◆ 재발률 높아서 나보고 좀 끈질긴 놈이래요
= 이렇게 여러 질환을 발병시키는 데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나를 없애려는 노력을 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도 않다. 일단 1~3주 정도 항생제나 위산 분비 억제제 등 약으로 90%까지 없앨 수 있지만 이후 항생제로 인한 내성균주가 생기기 쉽고, 항생제로 치료가 됐다 하더라도 나는 다시 위 속을 점령할 기회를 찾아 침투하기 때문이다. 1개월 내에 나에게 재감염되는 사례가 85.7%인 것으로 보고된다.
하지만 알아둬야 할 것은 나에게 감염돼 있다 하더라도 모두가 치료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궤양이 있거나 위암 수술을 받았을 때, 위암 가족력이 있을 때에 한해 제균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 나는 유산균이 함유된 음료가 싫어요
= 나는 유산균이 함유된 발효유를 무서워한다. 인정하기 싫지만 내가 싫다면 발효유를 꾸준히 마시는 것이 도움이 된다.
정현채 서울대 의대 내과 교수가 발표한 `유산균이 발효된 인체 위 점막에서 H.pylori(파일로리) 억제 효과`라는 논문에 그 내용이 잘 실려 있다.
정 교수는 한국야쿠르트 중앙연구소가 자체 개발한 발효유인 `윌`을 나에게 감염된 양성 환자 21명을 대상으로 4주간 하루 400㎖씩 마시도록 했다.
연구진이 위 점막 조직을 채취해 조직학적 변화를 분석한 결과 전체 중 18명에게서 내가 감소했고, 3명에게서는 내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나를 억제하는 능력과 항균활성 능력이 우수한 유산균들이 이 발효유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나에게 감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평소 항균 작용을 하는 녹차, 브로콜리, 애호박, 우유 등을 자주 섭취하는 것이 좋다.
또한 식사할 때 개인 접시 사용을 일상화하며, 깨끗한 식수를 먹고, 위생적인 공동 생활을 지켜가도록 한다.
※도움말=한국야쿠르트 R&BD부문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