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날에


동지(冬至)하면 ‘팥죽’이 떠오른다. 중국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보면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공공씨(共工氏)의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 역질귀신(疫疾鬼神)이 되었는데, 그 아들이 생전에 팥을 두려워해 팥죽을 쑤어 물리쳤다.”는 것이다. 팥은 붉은색을 띠고 있어 역귀(疫鬼)뿐만 아니라 집안의 잡귀를 물리치는 축사(逐邪)의 힘이 있다고 믿었다.

우리나라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동짓날에 적두죽을 쑤어 먹는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듯 팥의 붉은색은 귀신이 꺼리는 색이라 하여 악귀를 쫓아내고 집안의 안녕과 무병을 기원할 때 많이 쓰였다. 경기도에서는 팥죽으로 사당에 차례를 지낸 후, 집안 여러 곳에 팥죽 한 그릇씩 떠놓아 잡귀의 접근을 막았다. 경상도에서는 팥죽을 쑤어 삼신께 빌고 모든 병을 막는다고 해 솔잎으로 팥죽을 사방에 뿌리기도 했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는 물을 맑게 한다고 해 우물에 팥을 넣기도 했다.

특히 일본인들은 겨울철에 팥죽을 많이 먹는다. 팥죽을 ‘시루코(汁粉 しるこ)’라고 해 정중한 표현을 만들 때 사용하는 접두사 ‘오(お)’를 붙여 ‘오시루코(お汁粉)’라고 부를 정도로 즐기고 있다. 팥을 으깨어 죽을 달게 끓이고 안에 모치를 넣는데, 안에 넣는 것은 모치뿐만 아니라 밤조림이나 찹쌀만두 등 다양하게 만들어 먹는다. 베트남에서는 팥죽과 비슷한 음식으로 ‘쩨(che)’가 있다. 팥빙수처럼 얼음을 갈아 팥과 콩, 녹두, 땅콩을 섞어 차갑게 해서 먹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동짓날에 먹는 팥죽에는 찹쌀을 동그랗게 빚은 새알심을 나이 수만큼 넣어 먹었다. 이 때문에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도 생겼다. 한편으론 팥죽은 기근음식이기도 했다. 겨울에 쌀이 부족하면 팥죽을 쑤어 필요한 영양분을 보충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동지를 기점으로 낮이 다시 길어지기 때문에 동지에 건강한 음식을 나누면서 새봄의 경작을 준비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예전에 비해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는 경우가 많이 줄었다. 오히려 한여름 팥빙수나 단팥빵으로 팥을 접하는 것이 더 쉬워졌다. 그렇다고 동짓날 팥죽을 통해 잡귀를 물리치고 복을 기원했던 마음조차 사라졌을리는 없지만.



천남수 사회조사연구위원

[강원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