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이슈와 사람들] 신종플루와 질병관리본부 과장
ㆍ“가장 무서운 병은 방심”
ㆍ보건당국 직원들 24시간 비상체제
ㆍ백신주권도 확보
권준욱 질병관리본부 전염병관리과장(44)은 올 한해를 인플루엔자와의 싸움으로 보냈다. 봄부터 조금씩 퍼지던 신종인플루엔자 A(신종플루)가 가을 들어 국내에서도 대유행,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다. ‘심각’까지 올라갔던 국가전염병 재난단계가 지난 11일 ‘경계’로 낮아졌지만, 그는 아직도 “방심은 금물”이라고 외치고 다닌다.
“100여명의 보건당국 직원들이 휴일도 없이 24시간 신종플루와 싸웠다.” 권 과장은 숨가빴던 올 한해를 정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신종플루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닥친 것은 여름 이후지만 권 과장은 훨씬 전부터 비상근무를 했다. 1월 초부터 중국에서 조류인플루엔자 환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입국자 발열감시 등 대비를 철저히 하면서 조류인플루엔자를 무사히 넘기는 듯하던 4월 해외에서 신종플루 발생 소식이 들려왔다. 같은 달 30일 의심환자가 발생한 뒤 환자 강제격리 조치와 해외여행자에 대한 검역강화 등의 조치를 했지만 신종플루를 막을 수는 없었다. 7월9일 해외에 다녀오지도 않은 지방 여교사가 확진판정을 받더니, 같은 달 21일에는 어학원 영어교사들이 집단감염되면서 상황이 빠르게 악화됐다. ‘주의’였던 재난단계도 ‘경계’로 격상됐다.
“여름휴가의 끝무렵인 광복절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태국에 다녀온 55세 남성이 고위험군도 아닌데 신종플루 확진판정을 받은 뒤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튿날 또다른 사망자가 나왔고, 국민불안감도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름방학이 끝나 학생들이 다시 학교에 모이고, 기온도 내려가면서 신종플루는 급속하게 확산됐다. 10월 말~11월 초에는 감기환자 10명 중 9명은 신종플루로 인한 환자였고, 항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 처방건수도 하루 최고 14만건을 훌쩍 넘겼다. 전국에서 초·중·고교들이 잇따라 집단휴교에 들어갔다. 일각에서는 ‘수능시험 연기’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왔고, ‘백신 생체실험’이라는 문자메시지가 나돌아 공포를 더했다.
보건당국은 흔들리는 대신 공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10월30일에는 전국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도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구할 수 있도록 했고, 확산 속도가 빠른 학생들에 대해 고위험군에 앞서 백신을 접종했다. 권 과장은 “실시간으로 해외동향을 파악하고, 국내 상황을 진단한 뒤 책임감을 갖고 내린 최선의 결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신종플루 대응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주목할 만큼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6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 14일 현재 하루 평균 타미플루 처방은 2만건대로 줄었다. 한창 때의 7분의 1 수준이다. 일본은 여전히 신종플루가 유행 중이고, 중국에서는 사망자가 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의사인 권 과장은 “신종플루를 계기로 전염병에 대비하는 체계를 정비할 수 있었고, 국내 제약사를 통한 백신 개발로 백신주권도 확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내년 1월이면 신종플루 사태가 완전히 진정될 것으로 내다보는 권 과장은 그 이후를 생각하고 있다. 그는 “이제 지구는 ‘전염병’으로도 하나이다. 조류인플루엔자 변종 등 신종플루보다 강한 바이러스 출현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향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