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너의 멋진 인생을 위해!
<글·인하대병원 비만센터 이연지 교수 (가정의학과 전문의)>
[쿠키 건강칼럼] 방학이라 그런지 비만클리닉을 방문하는 청소년들이 늘었다. 어른보다 더 바쁜 청소년들을 위해 비만센터에서도 방학 4주간의 짧고 빠른 효과를 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이 프로그램은 스스로 생체 리듬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해 방학 동안에는 체지방감소를 목표로 전문가와 함께 노력하고, 학기 중에는 체중증가가 없도록 몇 가지 핵심적인 생활습관을 유지하도록 구성돼 있다.
그런데 이미 고도비만이 되어버린 청소년들을 자주 만나게 되면서, 필자는 엄마와 자녀 사이에서 몇 가지 특이한 관계의 패턴을 반복적으로 관찰하게 됐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불완전함
미국과 유럽 각지 비만연구 선진국들에서는 아직도 그렇다 아니다 말들이 많지만, 확실히 우리 비만센터에 고도비만인 자녀를 데리고 온 엄마들의 상당수는 완벽을 추구한다.
무언가 불완전한 일이 벌어지는 것을 원치 않기에, 예민하게 상황을 주시하며, 자녀의 작은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 자녀들은 ‘잔소리’로 받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늘 자녀에게 당부를 아끼지 않는다.
또한 의사도 완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한마디한마디 조목조목 따지며 때로는 진료 중에 반대의견을 개진하고 우리 아이는 그렇게 얘기해서는 소용이 없다고 자녀를 눈앞에서 깎아 내리기까지 한다. 그러다가 의사가 엄마의 의지와 다른 선택을 한다고 생각되면 화를 내거나 실망해 진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잘못하는 것은 엄마 때문…”
반면 자녀가 엄마의 불완전함을 탓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청소년기에 고도비만이 된 아이들은 분명히 여러 가지 생활습관의 문제를 가지고 있고 이를 개선하고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필요하다.
비만센터에서는 이런 문제점들을 발견하고 중요도를 결정해 하나씩 바꾸어나가는 숙제를 주게 되는데, 어떤 아이들은 이 숙제를 못하는 것은 ‘엄마’ 때문이라고 남 탓을 한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엄마’에 대한 귀찮음과 ‘엄마가 챙겨주지 않아서 못했다’는 비겁한 핑계가 한 마음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
이런 상황에서 가끔은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모자관계가 성립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떤 선택을 해도 엄마의 잔소리를 피할 수 없다는 인식으로 그저 무력하게 대응할 뿐이다.
엄마의 지시에 적당히 따르며 지시가 없는 것은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고, 엄마 앞에서는 생각을 말하려 하지도 않는다. 이럴 때 나타나는 수동-공격적인 반항이자 스트레스의 분출구로 아이들은 많이 먹고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고수한다.
이미 수동-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하려면 엄마는 엄마대로 끊임없이 지시를 내릴 수밖에 없다. 물에 빠져 숨이 막혀도 엄마의 지시 없이는 허우적대지 않을 만큼 수동적인 아이의 일상생활은 엄마의 당부와 지시로 유지된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언제나 지시를 따르고 잔소리를 들어야만 하는 청소년들에게 의사는 또 하나의 잔소리꾼으로 전락하기 쉽다. 주변사람들과 똑같이 ‘그만 먹어라, 운동해라’ 되뇌는 앵무새가 되지 않으려, 나는 그들 안에 꽁꽁 숨어있는 자아를 찾아 묻는다.
“너는 어떤 삶을 살거니?” 이 갑작스런 질문에 그동안 숙제를 함께 해주던 엄마들이 더 당황해 질문의 의도가 뭐냐고 캐묻지만, 나는 아이의 눈을 응시하고 아이의 자아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면서 계속 묻는다. “네가 살면서 원하는 게 뭐니?”
◇너의 ‘홀로서기’를 돕는 것!
물론 이와 같은 해석에 대한 오류의 가능성은 존재한다. 요즘의 부모와 자녀 사이가 대부분 이와 비슷한데 필자가 비만 청소년들과 부모들만 만나서 완벽주의적 성향과 수동적 대응이 비만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삶의 이유와 목적이 생기면 다이어트의 의미도 새로워진다는 사실이다. 어떤 멋진 인생이든 건강한 몸이 있을 때 더 실현 가능성이 커진다는 걸 아이들도 잘 알기 때문이다.
문득 ‘홀로서기’ 시집에 실린 서정윤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새의 날개를 꺾어 너의 곁에 두려 하지 말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 하나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
[국민일보-쿠키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