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안 먹는 아이, 더위 탓? 위장 탓?
글·허제신 원장(대전 함소아한의원)
(글을 쓴 대전 함소아한의원 허제신 원장은 정필(8세)와 진이(6세) 남매를 둔 아빠로 자상한 미소로 한의원에 내원한 아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밥 잘 먹는 아이, 부모에겐 가장 큰 행복
[쿠키 건강칼럼] 어느덧 부모가 되고 보니 아이가 커가면서 아이에게 기대하는 것과 걱정하는 것도 변하고 아이들이 주는 기쁨의 내용도 변한다.
아이가 막 태어났을 땐 그저 건강하기만을 바랐고 말 배울 시기가 됐을 때는 말문이 잘 터지지 않는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이제 학교에 들어가니 공부를 잘 했으면 하는 기대가 생긴다. 아마 부모라면 누구나 다 비슷할 것이다.
어른들 말씀에 자식 키우면서 가장 기쁠 때가 바로 ‘자식 입으로 밥 들어갈 때’ 라는 말이 있다. 전에는 소위 배고픈 시대라서 그러려니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기쁨일 것 같다. 나 역시 아이들이 먹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흡족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니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의 이런 기대에 부응(?)해주지 못하고 밥을 잘 안 먹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위장이 원래 허약한 경우, 스트레스 때문에 위장기능이 떨어진 경우, 심장 기운이 떨어지면서 소화장애가 오는 경우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식욕부진이 나타나 이를 개선하기가 쉽지 않다.
◇더위로 차가워진 배속, 뜸으로 따뜻하게
며칠 전 첫째 아들 개구쟁이 정필이가 신나게 야구를 하고 오더니 덥다며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 벌컥벌컥 마셔댔다. 그러고 몇 시간이 지났을까, 나한테 와서는 “아빠, 손발에 힘이 하나도 없고 토할 것 같아요”라며 울상이다. 저녁밥도 먹기 싫다고 기운 없어 하며 누워만 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는 심장의 기운이 허해지면서 소화기로 충분한 영양과 혈액이 공급되지 못해 위장 근육의 활동성이 떨어져 입맛이 달아난다. 특히 한여름에 운동을 하고 땀을 많이 흘리면 혈액이 체온 조절을 위해 체표면에 집중돼 소화기능이 더욱 저하된다.
정필이는 이런 몸에 찬물까지 먹었으니 탈이 난 것은 당연지사. 한의사 아빠를 둔 아이는 한의학 치료에 적응이 되었는지 조금 누워 있다가 일어나 먼저 뜸을 떠 달라고 한다. 아이를 자리에 눕히고 배에 뜸을 올려놓았다. 배시시 웃고 있는 아들이 귀여워 나도 따라 웃는다. 뜸의 온열 자극은 차가워진 속을 따뜻하게 해주기 때문에 이렇게 찬 음식에 의한 복통과 여름철 식욕부진 개선에 도움이 된다.
◇둘째 진이, 생후 3개월 때 보약발 받다
둘째 딸 진이가 태어난 지 3개월 정도 지났을 때 젖을 너무 적게 먹어 아이 엄마의 걱정이 잦았다. 생후 3개월이 된 아이는 최소 120ml 정도는 먹어줘야 하는데 우리 진이는 70~80ml 정도 먹는 것도 힘겨워했다.
계속 이렇게 먹었다가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지 불안해하는 아내를 보며 대책을 좀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이는 또래보다 마르고 먹는 양이 작을 뿐만 아니라 울음소리도 작아 소화기능이 약하고 기가 허해 식욕부진이 생긴 것으로 보였다.
황기, 백출, 인삼 등을 넣은 ‘보중익기탕’으로 소화기능과 약한 기운을 보강해 식욕이 생기도록 처방했다. 녹용도 한 첩 넣었다. 쓴맛이 없는 증류한약이라 그런지 다행히 잘 받아먹었고 이후 식욕도 많이 늘었다.
여섯 살이 된 지금 진이는 우리집 미식가로 통한다. 음식을 잘 먹기도 하지만 “엄마, 소금을 조금 더 넣어봐” “이건 닭고기로 만든 거네” 하면서 음식의 간이 어떤지, 음식에 뭐가 들어갔는지 분간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난 진이의 식욕은 그때 그 보약 덕분이라고 뿌듯해한다.
◇더위에 치친 아이 식욕에 관심을
아이들 입에 밥이 들어가는 게 가장 흐뭇하다는 어머니 말씀처럼 나도 이제는 그 흐뭇함을 누리고 산다. 아이가 밥 맛 없어 할 때는 무더위에 지친 것은 아닌지, 소화기가 약해진 것은 아닌지 세심하게 살펴주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속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한데 차가운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는 자제하고 찬 음식을 먹은 후에는 따뜻한 물 한잔으로 속을 보호해주자. 위장 속의 차가운 음식의 온도가 따뜻한 물에 중화되어 위장이 차갑지 않게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할머니 손은 약손’이라 부를 수 있는 안마요법도 좋다. 척추 중심에서 각각 옆으로 1~2cm 정도 떨어진 배수혈을 따라 꾹꾹 눌러주거나 반복적으로 쓰다듬어 주면 된다.
밥을 잘 안 먹으면 면역력이 떨어져 잔병치레가 잦고 성장부진으로 골골한 아이가 된다. ‘잘 먹는 아이’가 결국 ‘건강한 아이’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올 여름, 아이의 식욕을 점검해 주자.
[국민일보-쿠키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