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222) 설탕
에너지원 포도당과 과당으로 분해
1인당 연35kg 소비…과용하면 '독'


■ 바이오&헬스

달콤했던 설탕이 언젠가부터 비만을 비롯한 각종 생활습관병의 원인으로 지탄을 받는 신세가 돼버렸다. 설탕이 들어있는 음료수만 줄여도 체중 감소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설탕이 우리의 육체와 정신을 모두 망가뜨리는 고약한 중독성 `독약'이라는 극단적인 주장도 있다.

그런데 설탕은 꿀과 함께 우리 인류가 가장 오래 전부터 즐겨왔던 천연 감미료다. 로마 사람들은 설탕의 원료였던 인도 원산의 사탕수수를 `꿀이 흐르는 갈대'라고 불렀다. 인도와 중동지역에서만 생산되던 `인도 소금'은 귀할 수밖에 없었다. 설탕은 본래 꿀과 마찬가지로 귀족이나 즐기던 이국적인 기호식품이었다. 귀한 약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설탕은 탄소, 수소, 산소로 된 탄수화물의 일종으로 당(糖)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화학물질이다. 설탕은 우리 몸에서 곧바로 포도당과 과당으로 분해되어 흡수된다. 특히 포도당은 미토콘드리아라는 세포기관에서 연소되어 ATP라는 고에너지 물질을 만들어내는 에너지원이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물이 그런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해서 생명을 이어간다.

수많은 생물들이 생리적 활력을 뜻하는 달콤한 설탕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효모(이스트)와 같은 미생물은 설탕을 소비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에탄올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달콤한 음식은 에너지 공급이 끝났다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식사의 마지막에 달콤한 후식을 먹는 것이 그런 뜻이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적으로 산업화와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설탕의 생산과 소비도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설탕은 현대화를 상징하는 식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신분의 차별이 없어지면서 누구나 달콤한 설탕을 먹고 싶어했다. 수요가 늘어나면 공급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18세기 말에는 온대지방에서도 재배가 가능한 사탕무로 설탕을 만드는 기술까지 개발됐다.

그러나 사탕수수와 사탕무 재배는 많은 양의 물과 비료가 필요한 고비용 농업이다. 설탕 생산에도 많은 에너지와 비용이 필요하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설탕이 값싼 식품이 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설탕의 소비량은 국민소득에 비례한다. 선진국에서는 한 사람이 1년에 35㎏ 이상의 설탕을 소비한다. 후진국의 10배가 넘는 엄청난 양이다.

정부도 달콤한 음식을 먹고싶어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외면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유럽연합, 미국, 일본을 포함한 많은 선진국들이 세금으로 설탕 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와 제당산업계가 설탕 소비를 지나치게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사실 우리에게 설탕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영양학적으로 설탕은 소화효소에 의해 포도당으로 분해되는 녹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쌀이나 밀을 충분히 먹으면 굳이 설탕을 따로 먹지 않아도 된다. 그런 뜻에서 설탕은 소금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설탕과는 달리 우리 몸에서 소금의 생리적 역할을 대신해 줄 수 있는 다른 물질이 없기 때문에 우리 식탁에서 소금을 완전히 빼버릴 수는 없다. 풀을 먹는 가축에게도 소금을 따로 먹여야만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설탕도 너무 많이 섭취하면 문제가 된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생물의 경우에도 설탕이 너무 많은 환경에서는 정상적으로 살지 못한다. 설탕이 식품의 부패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설탕은 인류 문명사와 우리의 입맛에 큰 영향을 준 훌륭한 천연 기호식품이다. 그런 설탕을 독약이라고 몰아붙일 필요는 없다. 설탕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설탕을 너무 많이 먹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우리의 잘못된 입맛을 고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디지털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