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육류, 풍요의 상징에서 기피 식품으로
【서울=뉴시스】
과거 미국에서도 쇠고기나 돼지고기와 같은 붉은색 육류를 먹는 것은 풍요로운 삶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저녁에 고기를 구워 먹는 날은 특별한 날이었으며, 가족들의 기념일에나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주문할 수 있었다.
허나 이제 더 이상 육류를 먹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다. 지난 50년 동안 미국에서 쇠고기를 비롯한 적색육(赤色肉․빛깔이 빨간 육류) 소비가 갑절이상 늘어났기 때문이다. 문제는 적색육의 섭취가 늘어난 만큼 건강을 위해 들어가는 비용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미국 국립암센터(NCI)가 50여만 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지난 10년간 추적 분석한 결과를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붉은색 육류를 즐겨 먹는 만큼 건강을 위해 돈이 많이 들고, 장수가 힘든 것으로 조사됐다.
미 NCI는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적색육이나 햄과 소시지와 같은 가육류(加肉類․가공육류)를 많이 먹는 사람일수록 더 일찍 사망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사망자 두 사람 가운데 한 명꼴로 흔히 발견되는 심장질환과 암으로 사망할 확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의학전문지 ‘내과학 기록(the Archives of Internal Medicine)’에 게재된 이 연구 프로젝트는 미 NCI의 영양학자인 래쉬미 시나 박사의 감독으로 1995년~2005년 10년 간 진행됐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은퇴자협회(AARP)가 공동으로 수행한 식습관 및 건강연구에 참여한 50~71세 남성 32만2263명과 여성 22만339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모든 연구 대상자는 식습관에 대한 구체적 사항을 작성하고 흡연여부와 운동량, 알코올섭취, 교육, 약품복용, 체중, 가족력 등도 함께 기재한 뒤 10년간 연구에 참여했다.
◇사망 위험률 20~40% 증가시켜
10년 동안 연구가 진행되면서 남성 4만7976명이 사망하고 여성 2만3276명이 세상을 떠났다. 연구원들은 이들 사망자들의 사망시점과 구체적 원인에 대한 추적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사망한 연구 대상자들의 적색육 섭취는 하루 최저 1온스(약 28.4g) 미만에서 최대 4온스(약 113.4g)까지 분포했다. 또 가육류는 최소 1주일에 1회 섭취하는 사람에서부터 하루 평균 1.5온스(42.5g) 섭취하는 경우까지 존재했다.
이와 함께 사망자들의 적색육 소비와 사망 위험률간의 인과관계를 분석한 결과 육류의 섭취는 약 20~40% 사망 위험률을 증가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전체 미국인들의 경우로 환산하자면 육류섭취가 직간접적인 사망원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늘어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의 배리 팝킨 박사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각 연령대의 전체 미국인의 경우로 이번 연구를 확대해석해보면, 지난 10년간 사망한 남성 100여만 명과 50여만 명은 단순히 적색육과 가육류 섭취를 줄이는 것만으로 생존할 수 있었다”고 추정했다.
팝킨 박사는 “적색육과 가육류 섭취로 인한 사망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선 매일 먹는 햄버거를 1주일에 1, 2번만 먹고, 이틀에 1번꼴로 먹는 스테이크를 1주일에 1번으로 줄이고, 1주일에 1번씩 먹는 핫도그를 한 달 보름 만에 1번씩 먹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채식주의자가 아니라면 적색육을 대체할 고기로 칠면조, 닭 등 가금(家禽)류와 생선류를 떠올릴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백색육(白色肉) 섭취는 건강에 다소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과일과 야채를 많이 섭취하는 사람일수록 오래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팝킨 박사는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색육을 덜 섭취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다”며 “가축을 키우면서 발생하는 환경오염과 지구 온난화, 식수고갈 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육류섭취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축사육가 침식작용의 55%를 초래하고, 살충제 사용의 37%, 항생제 사용의 50% 원인을 차지하는 한편, 전체 질소와 인 성분 배출의 3분의 1을 점하고 있다”며 이 같이 설명했다.
◇굽거나 삶으면 발암물질 발생
그러나 과연 적색육의 섭취가 사망 위험률을 높인 주범이었을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번 연구에서 적색육 섭취가 가장 많았던 집단의 경우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을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흡연자나 비만자, 칼로리가 높은 식습관을 가졌거나 체내 지방이 많은 사람의 경우 사망 위험률이 클 수 있다. 또 과일 및 섬유질, 비타민 등의 섭취가 적고 운동량이 많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와 관련, 육류섭취와 사망 위험률의 인과관계를 제외한 모든 외부변인들은 철저하게 통제한 상태에서 분석했다는 게 NCI 연구원들의 해명이다.
연구원들은 “적색육과 가육류에서 단백질을 섭취하는 사람들은 암과 고혈압 등 사망 위험률이 높은 반면, 단백질을 적색육을 제외한 백색육이나 곡물에서 섭취하는 사람의 경우 암 발생률이 상대적으로 낮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콩과 같은 식물성 단백질을 섭취하거나 채식위주의 식습관 등이 어느 정도 사망 위험을 낮출 수 있느냐에 대해선 구체적인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한편 적색육을 굽거나 고온에서 삶는 경우 육류의 표면에 발암성 물질이 발생하며, 가육류인 소시지나 살라미, 볼로냐 등은 일반적으로 발암성 물질의 일종인 니트로사민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평범한 중산층의 사치로 여겨졌던 쇠고기와 소시지 등은 이제 건강한 삶과 장수를 위해 피해야 할 음식 1순위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