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B형 간염은 엄마 탓! 30.9% 이상이 출생시 엄마에게 전염되는 수직감염 대한민국 성인 두명 중 한명은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됐던 흔적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 이 시각에도 30세 이상 인구의 4.2%에서 B형 간염 바이러스가 활동 중이다. 1995년 보편적 예방접종 사업이 실시된 이래 유병률이 많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는 B형 간염이 만성 간질환과 간암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간암 사망률이 OECD국가 중 최고를 달리고 있는 한국이 B형 간염 유행국가라는 오명을 씻기는 당분간 어려울 듯하다. 8일 한림의대 강동성심병원 소화기내과 김형수 교수팀은 한국인이 B형 간염에 유난히 취약한 것은 출생시 어머니에게 감염되는 수직감염이 많기 때문이며, 이 비율은 전체 B형 감염 중 30.9% 이상을 차지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이번 연구에서는 수직감염의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예후가 나쁘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연구결과는 지난 7일(목) 스웨덴 웁살라대학교 초청으로 웁살라대학병원 대강당에서 개최된 ‘제2회 한림-웁살라 국제학술 심포지엄’에서 '한국인 B형 간염의 특성'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 한국인 B형 간염 수직감염이 최소 30.9% ' 감염경로별 분류(n=110) '흔히 한국 사람들이 술잔을 돌리거나 찌개를 같이 떠먹는 특유의 문화 때문에 B형 간염에 취약하다고들 알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위험은 거의 없다. B형 간염은 대부분 혈액을 통해 감염되기 때문에 주로 바이러스 보유자와의 성 접촉이나 수혈을 받는 경우, 면도기나 칫솔을 같이 쓰는 경우 위험하다. 그중에서도 어머니가 출산시 아기에게 감염시키는, 이른바 수직감염이 가장 많다. 출산 과정에서 산모의 혈액이나 체액에 다량 노출되기 때문에 이 시기에 감염 위험이 높은 것이다. 한림대의료원 산하 5개 병원을 방문한 B형 간염 환자 110명의 감염 경로를 조사한 결과 출산시 어머니로부터의 수직감염이 30.9%, 아버지로부터 감염이 3.6%, 수혈 0.9%, 경로가 불확실한 경우 64.5%로 나타났다. 감염경로가 불확실한 경우 중에도 수직감염이 다수 포함됐을 것으로 미루어, 우리나라에서의 수직감염은 최소 30% 이상으로 추산할 수 있다. 하지만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 상태가 유전되지는 않는다. ■ 비수직감염이 수직감염에 비해 조기 e항원 혈청전환률 3.7배 높다 문제는 이처럼 신생아시기에 수직감염된 경우 예후가 훨씬 나쁘다는 점이다. 성인기 감염의 약 90%는 합병증 없이 완전 회복되지만, 수직감염의 경우에는 90%가 만성 간염으로 진행한다. 만성 B형 간염 환자들은 정상인에 비해 간암 발생 위험이 100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성 B형 간염의 진행 경과 중에서 비록 완치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증상이 조절되기 시작하는 신호로서 ‘e항원 혈청전환’단계가 있다. 이는 개선된 예후와 연관이 있어 치료의 매우 중요한 지표가 된다. 이번에 연구대상이 된 만성 B형 간염 환자 110명 중 조기 e항원 혈청 전환이 관찰된 39명(35.5%)과 그렇지 않았던 71명을 비교하여 다변량 분석한 결과, 비수직감염이 수직감염에 비해 조기 e항원 혈청 전환률이 3.7배 높았다. 결국 수직감염이 예후를 나쁘게 만드는 중요인자 중 하나임이 명확히 밝혀진 것이다. ■ 수직 감염은 90% 이상 만성 간염으로 진행 간장은 침묵의 장기라 한다. 간에는 지각신경이 통하지 않아 통증이 없다. 또한 예비능력이 충분해서 간의 절반에 장애가 일어나도 나머지 부분이 대사작용을 감당하므로 정상작용을 할 수 있다. 때문에 B형 간염 환자의 약 30% 정도만 초기 감기와 같이 가벼운 증상을 경험하고 대부분은 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무시하기 쉽다. 전에 없던 피곤감, 권태감, 식욕부진이 생겼을 때는 이미 간염이 심하게 진행된 경우가 많다. 성인 감염의 경우 대부분 급성 B형 간염을 앓고 자연 치유되지만, 6개월 이내 회복되지 않으면 만성 간염으로 이행된다. 수직 감염된 경우는 90% 이상이 만성 간염으로 진행된다. 태어날 때부터 몸 안에 자리 잡은 B형 간염 바이러스는 우리 몸과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면서 수십 년 동안 동거를 하게 된다. 면역관용기라고 불리는 감염 초기 단계에는 바이러스 증식이 활발하여 혈액검사상 혈청 e항원이 양성이고 바이러스 수치가 높지만 활동성 간염의 증거는 없다. 그러다가 20~30대가 되면 갑자기 몸에서 B형 간염 바이러스를 적으로 인식하고 신체의 면역체계를 가동하기 시작하는데,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간세포가 파괴되고 증상이 급격히 심해진다. 바이러스를 빠른 시일 내에 성공적으로 제압하면 완치는 안 되더라도 바이러스의 증식이 적고 염증이 경미한 상태를 유지하게 되지만, 이 단계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간은 지속적으로 손상을 입고 그 결과 간경변증으로 진행할 위험이 높아진다. 결국 간암의 가능성도 커지는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의학교과서에는 대개 30% 정도의 만성 B형 간염 환자가 간경변증으로 진행한다고 나와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더 높아서 지난 20년 동안에 만성 B형 간염 환자의 약 50%가 간경변증으로 진행했다. ■ 바이러스 증식 억제가 최선의 치료 만성 B형 간염 환자에서 만성 간질환으로 진행하는 데는 바이러스 요인, 숙주인자, 환경적 요인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중 지속적인 바이러스 증식은 간질환 진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B형 간염 치료 목표는 지속적인 간염을 앓고 있는 환자를 적절히 선택하여 항바이러스 약제를 투약함으로써 간염 바이러스를 제거하거나 영구히 억제하여 간손상의 진행을 막고 증상을 호전시키는 것이다. 최근 10여 년간 다양한 약제(인터페론, 페그-인터페론, 라미부딘, 아데포비어, 엔테카비어 등)들이 개발되어, 단기적으로는 바이러스 억제와 간기능 호전의 효과가 있었고 장기적으로는 간경변증이나 간암 발생을 줄이고 환자 생존률을 증가시켰다. 일단 B형 간염 바이러스에 노출된 환자는 간기능을 잃지 않기 위해 생활 속에서 항상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선 절대 금주를 해야 한다. 간에서 술이 분해되기 때문에 간염 보균자가 과음하면 간에 부담이 되어 간염, 간경화로의 진행을 재촉한다. 또한 간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약물이나 한약도 피해야 한다. 과로를 피하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고 담배를 끊는 등 건강한 생활습관을 생활화해야 한다. 간염보균자는 주기적인 진찰 및 간기능 검사를 6개월에 1회 정도로 실시하여 간경변이나 간암으로의 진행을 막는 것이 최선이다. ■ B형 간염 예방이 곧 만성 간질환?간암 예방 B형 간염 바이러스의 감염을 막기 위해서는 항원, 항체가 없는 사람에게 예방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방백신은 근육주사로 세 차례 접종하는데, 통상적으로 1차 접종 후 1개월 후에 2차 접종을, 그 후로 5개월 후에 3차 접종을 실시한다. 우리나라 B형 간염바이러스의 주요 전파 경로인 수직감염의 경우에도 출생 직후 신생아에게 면역 글로블린 및 백신 접종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경우 감염을 대부분 차단할 수 있다. 전염에 대해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 사람들은 주로 환자의 가족, 배우자, 의료인 혹은 검사실 종사자 등이다. 그러나 예방백신을 접종하여 면역 항체가 생성되었거나 B형 간염바이러스에 대한 자연 면역 항체를 이미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대부분 예방이 가능하다. 가족 중에 보균자가 있는 경우 필히 예방백신을 접종하고, 칫솔이나 면도기를 따로 사용하고 음식물을 끓여 먹는다든지 손을 항상 깨끗이 씻는 등의 일반적인 개인위생을 지킴으로써 예방할 수 있다. B형 간염의 예방이 결국에는 만성 간질환, 나아가서는 간암까지 예방할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이다. <도움말 : 한림대의료원 강동성심병원 소화기내과 김형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