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60년-달라진 식생활
넘치는 먹거리 ‘웰빙’이 화두
올해는 대한민국 건국 60년이 되는 해다. 일제 강점기때의 철저한 수탈로 아무것도 없는 빈 주먹의 국민들은 초근목피로 끼니를 때우며 나라를 세웠다.
건국 후 60년이 흐르는 동안 우리 국민은 경제규모·주거환경·산업구조·남북관계·문화·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 세계가 주목하는 괄목할 발전을 이뤄냈다.
특히 극심한 식량난으로 매년 보릿고개를 겪으며 흰쌀밥 배터지게 먹어보는게 소원이었던 현재의 장년층으로서는 요즘의 넘쳐나는 먹을거리를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낄 만 하다.
지난 60년간 절대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 비만을 걱정하고 서구형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오늘의 현실을 보면서 달라진 식생활을 되짚어 본다. /편집자 주
초근목피 걱정서 ‘잘먹고 잘살기’ 고민
산업화로 가공식품 ‘천국’ 성인병 위협
경북 예천의 농가에 사는 정옥연(78) 할머니는 끼니 때마다 밥을 남기는 중학생 손자를 보면 역정을 낸다. 때로는 ‘밥을 남겨 개를 주면 출세를 못 한다’는 옛말까지 들먹이게 된다.
정씨는 마당에서 키우는 개를 볼 때마다 “때를 잘 만나 호강한다”고 시큰둥하게 뇌까린다. 개밥 양푼에는 무청 시래기와 생선토막, 흰 쌀밥이 마구 뒤섞여 있다.
60년 전 대한민국 건국 당시 18세였던 정씨에게는 맛있는 먹을거리들이 남아 버려지는 지금의 풍요로움이 믿기지 않는다.
밀기울·보리죽 등으로 연명
1948년 대한민국은 극심한 식량난 속에 건국됐다.
제국주의 일본의 곡물 공출에 시달린 데 이어 광복을 계기로 해외에서 동포들이 몰려들어 먹을 것이 부족한 시절이었다.
식문화 연구자 이춘자씨는 “당시 상황에 관한 자료가 없어 학계에서도 그 시기는 ‘암흑기’로 불린다”면서 “다만 일제강점 말기보다 오히려 못했다는 증언이 많은 점을 보면 ‘정말 형편 없이 못 먹었던 때’라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 무렵 요리책인 조선요리제법(1942년)과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43년)은 조선인들의 주식류를 밥·죽·미음·국수·만두로 분류하고 굴밥·송이밥·깨죽·잣죽 등 수십 가지 요리를 소개하지만 이는 지주 등 극소수 부유층의 `사치'일 뿐이었다는 게 공통된 증언이다.
광복 후 청년기를 지낸 70∼80대 노인들은 당시 쌀과 보리를 먹긴 했으나 비교적 사정이 괜찮은 집에서도 한 끼에 한 식구 모두 먹는 곡식이 한 홉(180cc)이 안 됐다고 회상했다.
밀을 빻은 뒤 체로 쳐서 남은 찌꺼기로 만든 밀기울 죽, 쌀 한 홉에 쑥만 잔뜩 넣어 찌거나 끓인 쑥밥이나 쑥죽, 보릿겨를 빻아 소다를 넣어 부풀린 뒤 찐 개떡, 소나무 속 껍질에 쌀가루를 넣어 삶은 송기죽(松肌粥), 호박 조각 사이로 밥알이 거의 안 보이는 멀건 쌀죽, 보리죽 등으로 연명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술도가에서 얻어온 술 찌기미(술을 거르고 난 찌꺼기)를 먹고 취기에 얼굴이 빨개진 어린애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서글픈 풍경이었다.
음력설이 지나 곳간이 바닥나는 보릿고개(춘궁기)에는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곡식 한 가마를 빌리고 가을에 두 가마를 갚는 식으로 노동력을 저당잡히기도 했다.
이런 악순환을 피하려고 겨우내 서민들은 소 여물로 쓰려고 말려둔 콩이나 팥잎을 밀가루에 묻힌 뒤 쪄 먹으면서 한 끼를 때우기도 했다.
소작농의 딸이었던 정옥연씨는 “봄이 되면 하루종일 쑥이나 냉이를 캐는 게 일이었고 개나리 새싹 같은 순이란 순도 모두 떼어가 구경하기도 힘들었다”며 “못 사는 집에서는 새싹에 고운 점토를 넣어 죽을 끓이는 경우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경남 산청의 지주 딸이었던 김순례(84)씨는 “끼니마다 쌀밥이나 보리와 쌀을 섞은 잡곡밥을 먹었고 고기나 생선도 조금씩 밥상에 올라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보통 집에서는 제사 때가 아니면 고기는 입에도 못 댔다”고 말했다.
끼니는 걸러도 간식은 챙겨
‘백미 마늘 파 배추김치 소금 간장 참기름 설탕 고춧가루 양파 콩기름 깨 멸치(자건품·煮乾品) 달걀 된장 고추장 두부 풋고추 당근 김 무 돼지고기 당밀 애호박 후추 대두 쇠고기 콩나물 보리 우유.’
보건복지가족부의 2005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집계된 ‘요즘 한국인이 자주 먹는 30대 식품’을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다. 건국 무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식단이다.
국민의 97%가 하루에 적어도 한번 이상은 흰 쌀밥을 먹고 51.4%는 바다에서 나는 어패류를 먹으며 35.6%와 29.3%는 각각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하루에 한 차례 이상 섭취한다.
끼니를 거르는 결식(缺食)비율은 아침이 16.7%, 점심이 2.3%, 저녁이 1.6%로 나타났지만 먹을 것이 없어서 굶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유로는 ‘습관이 돼서’가 26.9%로 가장 많았고 ‘늦잠을 자서(24.1%)’, ‘시간이 없어서(22.2%)’, ‘식욕이나 반찬이 맛 없어서(14.7%)’ 등이 뒤를 이었다.
끼니는 걸러도 간식은 꼭 챙겨 먹어야겠다는 사람도 많다.
국민 10명 중 7명이 하루 한 차례 이상 간식을 먹는다.
하루 1회가 44.1%, 2회가 19.3%, 3회 이상이 7.8%다.
과일·과일주스(27.2%), 과자 및 스낵류(25.3%), 우유·유제품(14.7%), 음료수(11.2%), 빵·케이크류(9.8%), 라면(4.5%), 떡·떡볶이(2.9%), 국수류(1.2%), 튀김류(0.4%) 등 간식 종류도 다채롭다.
한양대 식품영양학전공 박용순 교수는 “먹을거리가 전혀 없다는 게 건국 무렵의 문제였다면 지금의 문제는 먹을거리가 너무 많아서 올바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6·25 거치며 서구식 변모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 일세기 동안의 한국인 식습관의 변화와 보건영양상태의 추이분석’이라는 논문에서 “한국 식생활 변화는 전통 식사법이 서구식 식사법으로 바뀌는 과정”이라고 짚었다. 대다수 영양학자들도 이 의견에 공감한다.
한국인 식생활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은 분유와 밀가루 등 미국 무상 원조물자가 본격적으로 들어오는 계기가 된 6·25전란이라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미제 분유가 들어오면서 한국인들도 우유를 마시기 시작했으며 설탕, 유지류 등도 전쟁을 계기로 보편화됐다.
미군과 유엔군에서 흘러나온 달콤한 서양과자를 맛본 어린이들은 한과를 잊기 시작했다.
국가적으로는 ‘서구식 식습관을 모방하는 것이 바로 영양개선’이라는 인식까지 생겨나면서 분식이 장려됐다.
이후 1, 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62∼1971년)으로 한국 경제가 급성장한 데 발맞춰 설탕·포도당·전분·밀가루·라면 등 단맛과 포만감을 주는 탄수화물 가공품을 생산하는 대규모 식품공업도 등장했다.
식량부족 시대를 상징하는 단어인 ‘보릿고개’도 1970년대 초반을 전후해 사실상 사라지기 시작했다.
1970∼1980년대를 거치면서 유제품·소시지·대두유 등 지방과 단백질 함량이 높은 식품과 커피, 탄산음료와 같은 기호식품 등이 대량 보급되면서 이제는 오히려 지방과 탄수화물의 과잉섭취가 국민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어린시절 바른 식습관 중요
최근 몇 년 사이에 웰빙(well-being) 바람이 불고 있는 것도 이런 우려와 무관하지 않다.
국민건강영양조사(2005년)에 따르면 동물성 식품의 섭취비율은 1969년에는 3%에 불과했고 1970년대 중반까지도 10% 미만을 유지했으나 1987년에는 20%를 넘었고 2005년에는 21.6%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특히 라면은 13∼29세의 청소년과 청년이 가장 많이 먹는 것으로 조사됐고 빵·도넛·햄버거·스낵과자·케이크 등 지방이 많이 함유된 식품도 7∼12세의 어린이와 13∼19세 청소년이 가장 많이 섭취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30∼64세 성인과 65세 이상 노인들은 패스트푸드를 거의 먹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양대 식품영양학 전공 박용순 교수는 “현재 상황에서는 예전에 먹던 대로 돌아가서 고기를 과도하게 먹지 않고 건강에 좋은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자는 게 웰빙”이라고 잘라 말했다.
박 교수는 “패스트푸드 등 식단의 서구화로 지방과 단백질을 과다 섭취하는 추세가 주로 어린이와 10대·20대에서 관찰되는 게 문제”라며 “어린 시절 습관화된 입맛은 절대 고칠 수 없으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당뇨, 고혈압, 신장병 등 서구형 성인병이 우리 사회에서도 만성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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