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잠자는 ‘식생활교육추진법’ 깨우자 참여정부 농특위서 논의하다 유야무야…국민농업포럼서 법 제정 위해 공청회 한 중학교에서 학교 텃밭에서 재배한 상추 등 친환경 농산물로 급식을 하고 있다. "21세기에 일본의 발전을 위해서는 어린이들이 건전한 마음과 신체를 길러 미래와 국제 사회를 향해 날아갈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모든 국민이 심신의 건강을 확보하여 평생 생동감 넘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 식육(食育)기본법의 전문(前文)은 어린이와 국민의 건강이 중요하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선언하면서 시작한다. 어린이와 국민의 건강이 바로 일본의 발전이라는 등식을 내세운 것이다. 최근 광우병에 대한 쇠고기 안전 논란이 불거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의 식육기본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민간단체에서는 우리도 일본의 식육기본법과 유사한 기본법을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2001년 10월 BSE(광우병) 감염소가 확인되면서 먹을거리에 대한 불신이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일본과 한국이 시차를 두고 광우병 안전 논란이라는 비슷한 상황을 겪으면서 식육기본법과 같은 법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일본은 2005년 6월 식육기본법을 제정했고, 다음 해인 2006년 3월에는 식육추진 기본 계획을 작성해 국민 스스로 건전하고 안전한 식생활을 실현할 수 있도록 식습관 교육에 들어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정은미 박사는 “일본은 최대의 농산물 수입국으로 수입 식품의 안전성과 신뢰도가 늘 문제가 됐다”면서 “식육기본법은 식품 안전은 물론 국민이 안심하고 식품을 섭취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식육기본법 추진은 쇠고기 수입 논란과 마찬가지로 새 정부의 교체와 연관돼 있다. 참여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였던 농어업·농어촌 특별위원회(이하 농특위)는 일본의 식육기본법을 본떠 국민식생활교육추진법의 제정을 추진해왔다. 2006년 7월부터 전문가 그룹을 만들어 지난해에는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식생활교육추진법 관련 소위원회를 열었다. 이미 지난해 4월에 법안 초안을 만들어 전문가의 충분한 검토를 거쳤다. 하지만 농특위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2007년 11월 전문가 간담회 결과 보고서를 마지막으로 식육기본법에 대한 자료가 더 이상 올라와 있지 않다. 농특위 위상 격하로 법 추진 소강상태 2006년 급식으로 집단 설사 환자가 발생하자,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서울시 학교보건진흥원 관계자와 학부모들이 함께 급식 재료를 점검하고 있다. 2002년 발족한 농특위는 1기와 2기를 거친 후 현재 위원조차 선정되지 않았다. 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의설치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은 2007년 12월 31일까지 효력을 가졌다. 농특위는 명맥은 유지하고 있지만 올해 들어 대통령 자문위원회에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직속 위원회로 위상이 격하됐다. 농특위의 한 관계자는 “식생활교육추진법의 초안은 농특위에서 마련했지만 위원을 선정하고 본격적으로 활동해야 최종 입안과 입법 추진이 이뤄질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쇠고기 협상 파문으로 농림부가 복잡한 상황에 처해 위원회 문제를 다룰 처지가 못 된다”고 설명했다. 농특위의 위상 격하와 새 정부 출범, 18대 국회 출범과 맞물리면서 식생활교육추진법 추진 역시 소강기를 맞았다. 농특위에서 식생활교육추진법 제정을 추진했던 임노규 전 전문위원(농산어촌홍보전략포럼 감사)은 “농특위의 위상이 떨어지면서 식생활교육추진법 제정 역시 추진력이 떨어졌다”면서 “농특위에서 법률 초안을 만든 만큼 18대 국회가 출범하면 각 당에 법률 의견서를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임 전 전문위원은 “식생활교육추진법의 입법화는 부처간 이해관계가 얽혀 정부의 특정 부서에서 하기 힘들다”면서 “일본 모델을 따라 의원 입법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대선에서 각 정당에 이 법안의 추진 의향을 물었더니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것이 임 전 전문위원의 설명이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 측은 “올해 농특위에서 식생활교육추진법안을 제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강 의원 역시 일본의 식육기본법과 유사한 식생활교육추진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며 도입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농특위에서 식생활교육추진법 제정을 추진하던 전문가들은 구심점을 잃게 되면서 외부에서 다시 모였다. 농특위 대신 국민농업포럼이란 민간 단체가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국민농업포럼에서는 5월 28일 식생활교육추진법 제정에 대한 공청회를 연다. 이들 전문가가 농특위 시절 마련한 식생활교육추진법 초안은 4장 27조의 조항으로 이루어졌다. 이 법안의 취지문에 드러난 내용은 식생활교육추진법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국민의 건강은 국가의 인적 경쟁력이고,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인간의 기본적인 소망입니다. 또한 식생활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기본 요소고, 균형 있는 영양 섭취는 육체적·정신적 성장 발달 및 건강의 기본 요소로서 식생활 교육을 통한 국민의 영양 개선과 체력 및 체위의 향상, 건강 증진, 질병 예방은 곧 국가 번영과 국민복지를 위한 기본 조건입니다. (중략) 올바른 식생활 교육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건강과 국가 경제, 환경 보전 등의 측면에서 기본 이념을 명확히 하고 그 방향성을 제시하며, 종합적이고 계획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하기 때문에 식생활 전반에 대한 국가의 식생활 교육 관리체계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이 법률을 제정하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식생활교육추진법의 제정과 아울러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환경도 마찬가지로 구축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 정은미 박사는 “법률만 제정하고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네트워크가 없다면 식생활교육추진법이 유명무실해질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생산자와 소비자, 민간단체가 서로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식생활 교육 전담 인프라 필요” 실제 법안 마련에 참여한 임노규 전 농특위 전문위원은 “법만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 중요하다”면서 “무엇보다 식생활 교육을 전담할 수 있는 교육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영양사·조리사·간호사 등 유사 직종이 있지만 전문적으로 식생활 교육을 할 수 있는 인재 확보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이들 식생활 교육 전문가가 활용할 교재가 없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임 전 전문위원은 “농특위에서 활동했던 전문가들이 다시 모여 식생활 교육에 대한 교재를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재정 지원 역시 식생활교육추진법 시행의 선결 조건으로 지목되고 있다. 정은미 박사는 “법률 제정과 함께 이의 실행에 필요한 예산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전 전문위원도 “국가가 얼마나 재정을 지원할 수 있느냐가 식생활교육추진법 시행의 효과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식생활교육추진법 제정과 더불어 식생활 교육에 대한 중요성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식품에 대한 안전과 안심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은미 박사는 “안전은 물질적인 개념이지만, 안심은 심리적인 개념”이라면서 “안전한 식품을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선택할 수 있는 식생활 교육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최근 식품 안전 논란에 대해 식품의 공동체성을 강조했다. 정 박사는 “(식생활교육추진법 제정에 대한 관심은) 이제까지 식품의 공동체성을 모르고 있었으나 먹을거리가 공동체성의 기본이란 사실을 인식하는 시기가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뉴스메이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