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광장] 식품위생 사고와 발효의 지혜
복잡해진 가공.유통과정
먹을거리 위험성 상존
80여종 발효식품 만든
조상지혜 계승해나가야
식중독과 광우병의 원인으로 의심되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병든 소 도축과 관련해 최근 사상 최대 규모의 쇠고기 리콜조치가 있었다. 또한 일본에서의 중국산 농약만두 사건처럼 식생활을 위협하는 식품위생 사고가 이곳저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살아 있는 즐거움의 원천이 돼야 할 음식물이 오히려 위생 사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것은 인류에게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식품의 원료가 되는 농산물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식품위생 사고는 생육기간이 상대적으로 길고 또한 관련 식품과학이 발달했기 때문에 사전점검을 위한 철저한 행정조치가 이뤄지면 그 위험성은 감소시킬 수 있다.
그러나 농산물 생산과정 이후의 식품 가공과정이 점차 복잡해지고 유통기간이 길어지면서 가공 및 유통 단계에서의 식품위생 관련 사고는 늘어나는 추세다. 고의적인 독극물 투입과 같은 범죄행위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가공.유통과정에서의 식품위생 사고는 식품의 부패에 의한 변질에서 발생하는 것들이다.
음식물을 가공하고 보관.유통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기 쉬운 부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가 발견하고 발전시킨 가장 위대한 방법은 발효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곰팡이.세균 및 효모균 등 균류의 작용 결과라는 점에서는 음식물의 부패와 발효의 두 현상은 동일한 성격을 갖지만, 그 결과는 부패가 음식물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데 반해 발효는 그 가치를 향상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대조되는 현상이다.
선사시대 훨씬 이전부터 인류는 자연상태에서 채취한 원시 곡물과 과일.열매를 갈무리하면서 부패로 인한 보관 실패와 보관의 성공인 발효의 경험을 우연히 반복하는 과정에서 식품을 발효시키는 방법을 터득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미생물에 의해 음식물에 변화를 주는 발효가 인간에게 제공하는 효능으로는 유해 미생물의 오염을 막아 부패를 예방한다는 점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맛과 향기를 향상시키는 효과도 있다. 때로는 식품의 영양적 가치를 높이기도 하며 소화력을 증진시키는 효과를 제공하기도 한다.
발효식품이 세계 어느 곳에서나 발견되고 또한 활용돼 현재 80종류를 넘을 정도로 다양하지만, 실제 식생활에서의 활용빈도와 질적인 수준에서 우리나라가 단연 앞서고 있다는 사실은 지혜로운 조상을 둔 자긍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우리 민족이 발효식품을 활용함으로써 식생활의 과학화와 식품위생에서 앞서왔다는 것이 인구에 비해 농지 여건이 불리한 가운데서도 단기간 내에 높은 경제성장을 가능케 한 주요 원동력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 건강지인 ‘헬스 매거진’은 2006년 3월 우리의 김치를 스페인의 올리브유와 그리스의 요구르트 등과 함께 세계 5대 건강식품의 하나로 선정한 바 있다. 김치류.장류.젓갈류 등처럼 광범위한 발효식품을 주축으로 한 우리 음식이 위생 면이나 영양 면에서 우수하다는 사실은 이미 과학적으로 또는 세계인들의 경험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재래식 된장과 간장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장류 식품은 삼국시대부터 문헌에 나타나고 있는 대표적 발효식품이다. 이 장류 식품은 가장 햇볕이 잘 드는 장독대 위치 선정의 슬기로부터 출발하여 해가 뜨고 지는 시각에 맞추는 장독뚜껑의 열기와 닫기를 날마다 이어가는 주부들의 정성으로 완성되는 전통 식품이다.
고혈압.당뇨병 등 성인병이 넘쳐나는 현대 인류의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즈음 활기를 띠고 있는 ‘슬로 푸드(slow food)’ 운동의 개념에 가장 알맞은 식품이 바로 우리의 발효식품이 아닐까 싶다.
의식주 생활의 과학화 물결에 적극 동참하는 것이 물론 바람직한 대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식생활에서만은 발효식품이 중심이 된 우리 조상의 지혜를 전승.발전시키는 것이 식품위생을 지키고 건강을 증진시키는 지름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헤럴드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