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식탁, 제대로 알고 먹자
이왕 먹는 음식 알고 먹으면 더 좋다. 그러나 너무 많이 알게 되면? 먹을 게 없다. 그래도 먹어야 살잖아? 그럼 도덕적으로 만족스러운 방법으로 재배되고 사육된 식재료를 사려깊게 골라 적당한 양만 느긋하게 먹자.
미국 저술가 마이클 폴란이 책 '잡식동물의 딜레마'(원제 The Omnivore's Dilemma:The Natural History of Four Meals)에서 500여쪽에 걸쳐 주장하는 내용이다.
이런 지당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솜씨가 이 책을 기존의 음식문화 책과 차별화한다. 폴란은 연구결과와 통계수치를 나열하는 방법을 택하는 대신 음식의 뿌리를 파헤치는 탐정이 되기를 자청했다.
아이오와의 옥수수밭, 버지니아의 유기농 농장, 캘리포니아의 숲속으로 뛰어들어 '체험 삶의 현장' 식 르포의 주인공으로 변신한 자신의 모습과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유머넘치는 글로 풀어냈다.
장면 하나. 이야기는 가족과 함께 맥도날드에 들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맥도날드의 메뉴를 거꾸로 거슬러가던 저자는 냉동트럭, 창고, 도살장, 공장식 농장, 목장, 식품과학 실험실, 조미료회사, 석유 정유소, 곡물창고를 거쳐 아이오와주의 망망대해같은 옥수수밭을 만난다.
햄버거안의 고기가 된 소가 먹은 사료는 옥수수이며, 치킨 너깃은 옥수수 사료를 먹은 닭과 옥수수 녹말, 고과당옥수수시럽(HFCS)을 버무려 옥수수 기름에 튀겨낸다. 롤빵과 케첩, 샐러드 드레싱과 너깃소스에도 HFCS가 들어있으며 밀크 셰이크에도 HFCS 이외 고형 옥수수시럽, 모노글리세리드와 디글리세리드, 옥수수를 먹고 자란 가축의 우유가 들어있다. 소다수에도 마찬가지다.
맥도날드의 메뉴를 질량분석계에 돌려 봤더니 놀랄만한 사실이 드러난다. 함유된 옥수수 비율이 소다수 100%, 밀크셰이크 78%, 샐러드드레싱 65%, 치킨 너깃 56%, 치즈버거 52%, 프렌치프라이 23% 였다.
과잉 생산되는 옥수수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생긴 옥수수 의존도는 이제 전 세계를 장악할 지경이고 비만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중이다. 게다가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진 많은 사람들은 음식의 맛도 모르는 채 10분만에 식사를 끝낸다. 우리는 집단 섭식장애에 걸린 것은 아닐까.
"우리 같은 잡식동물의 눈에 무한히 다양해 보였던 음식들은, 질량분석계의 눈으로 보자 사실은 거의 한 종류로 이루어진 음식이었음이 밝혀졌다. 이것이 바로 산업적 섭식자인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옥수수를 먹고 사는 코알라가 된 것이다"
장면 둘. 깔끔한 유기농 식품 전문점에서 보통 제품보다 훨씬 비싼 유기농 제품을 카트에 싣는 당신. '방목해서 키운' 소의 등심 스테이크, '닭장 밖에서 채식만 한 닭'의 달걀, '전자레인지용 유기농 즉석조리식품'이 자리잡은 진열대 위에는 유기농 농부들을 찍은 사진까지 걸려있어 믿음직스럽다.
그러나 안심하긴 이르다. 소비자들은 30년의 제법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유기농'이라는 단어에서 선구자적이고 철학적인 뭔가를 기대하지만 이제 유기농은 큰 산업이다. 사실 '유기농'과 '산업'이라는 말이 결합한 '유기농 식품산업', 전자레인지와 유기농이 결합한 제품 이름 자체가 대단한 모순 아닐까.
저자는 유기농 산업의 뱃속에 진정으로 목가적인 낭만이 있을 것이라고 꿈꾼다면 어서 깨어나라고 말한다. 공장식 농장의 사육장에 갇혀 유기농 인증곡물을 사료로 먹는 소들이 하루 세번 우유짜는 기계의 도움으로 생산해내는 것이 유기농 우유다. 이제 소들은 더 이상 풀을 먹지 않고 옥수수를 먹어 덩치를 키운다.
'방목해서 기른' 이라는 라벨을 달고 있는 닭고기들은 어떤가. 생후 5-6주가 되기 전까지는 철저히 닭장 문을 닫아두고 키운 뒤 도축 2주 전에야 조그만 풀밭으로 연결되는 작은 문을 열어주면서 키우는 닭일 가능성이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유기농 음식이 정말 나은가. 정말 유기농 음식을 더 비싸게 주고 살 가치가 있는 것일까. 맛도 유기농이 대체로 낫고 산화방지물질인 폴리페놀이나 아스코르빈산 등 영양성분 함량도 유기농 제품이 훨씬 많다. 하지만 유기농 제품이 사흘 동안 트럭에 실려 국토를 횡단한 상태라면 차라리 기존 방식으로 재배했지만 금방 수확한 신선한 농산물을 고르는 게 현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질문을 소비자 이외에 '다른 누구에게 나은가'라고 던져보면 "환경에 더 낫고, 유기농 농부에게 더 낫고, 보건에 더 낫고, 납세자들에게 더 낫다"고 답할 수 있다. 살충제가 농장 일꾼의 혈관 속으로 흘러들어가지도 않고 질소나 성장호르몬이 강에 유입되는 일도 없고, 정부 보조금이 쓰이는 일도 없으니까.
육해공을 가리지 않고 음식을 조달하는 잡식동물답게 저자는 다음 장면에서 사냥총을 들고 숲으로 가 야생 돼지를 잡고 버섯을 캔다. 달팽이가 상징인 '슬로푸드(Slowfood)' 운동을 생각해보고 채식 체험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농장에서 얻어온 수확물들로 근사한 저녁 식탁을 준비하면서 프랑스인의 느긋한 식사문화를 동경하기도 한다.
저자가 말하는 잡식동물의 특징은 음식 앞에서 생각, 즉 딜레마에 빠진다는 것이다.
"시리얼 코너의 상품 성분을 주의깊게 살펴볼 때, 맥도날드에서 새로 출시된 치킨 너깃을 먹어볼지 말지 생각할 때, 기존 딸기 대신 유기농 딸기를 구입하는 것이 비용 대비 효과면으로 나은지 여부를 고민할 때, 육식이 윤리적으로 옹호할 만한 행위인지 여부를 판단할 때"가 바로 딜레마의 순간이다.
"우리가 먹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디서 나왔는지 그것이 어떻게 우리가 먹는 음식이 되었는지, 그리고 정말로 얼마만한 비용이 들었는지 잘 안다고 상상해보자. 그러면 우리는 식탁에서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세상 펴냄 / 조윤정 옮김 / 560쪽 /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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