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와인]와인의 코디네이터, 소금
샴페인 명가 돔 페리뇽의 쉐프 베르나르 당스가 푸아그라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하나, 기억속의 소금 맛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집에 오면 막소금에 묻어 둔 ‘썩은 굴비’를 밥솥에 쪄 내놓으신다. 어찌나 짠지 젓가락도 안 들어 가지만, 그 짭짜름한 오미자 색 살 귀퉁이를 떼어내 흰 쌀밥에 얹어 오물거리면 구중 별미가 부럽지 않다. 이 비슷한 짠맛을 지중해의 앤초비가 가지고 있다. 그들은 갓 잡은 멸치를 해염과 섞어 한달간 저장했다가, 머리와 뼈를 발라내 나무통 안에 소금과 생선을 켜켜이 넣고 무거운 것으로 눌러 놓는다. 석달쯤 지나면 생선 가시 주변이 거의 포도주 색이 되면서 간물은 분홍색으로 변한다. 올리브오일에 보관하여 스파게티나 샐러드, 피자에 악센트처럼 얹어 먹는다. 토핑으로 살짝 올린 앤초비 요리는 키안티 등 가벼운 이탈리아 와인과 단짝을 이루지만, 앤초비가 메인이 되어 짠맛이 세면 프랑스 소테른, 아이스 와인처럼 단맛이 깊이 밴 와인이 당긴다. 음식맛이 진하고 강하면 와인 또한 농도가 진하거나 힘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매칭의 원리다. 혹자 대비의 즐거움을 누리는 모험파도 있지만, 어느 한쪽이 퉁겨 올라서는 안 되게 마리아주(mariage)를 엮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둘, 음식 속의 소금 맛
전세계 미식가들에게 사랑을 받는 최고의 소금 중 하나는 프랑스 서부 해안지역 게랑드 산 꽃소금이다. 몇 해 전 샴페인 명가 돔페리뇽 쉐프 베르나르 당스(51)가 한국에 와서 샴페인과 어울리는 푸아그라 요리를 시연한 적 있다. 물론 푸아그라는 달콤한 소테른과 둘도 없는 궁합이지만 샴페인 또한 느끼한 뒷맛을 잡아주며 경쾌하게 어울린다.
한데 그때 맛본 푸아그라 맛을 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특별한 요리비법이 있었던 건 아니다. 비결이라면 신선한 생 푸아그라였으며 자체에서 기름이 나오니 올리브유를 두르지 않고 구웠고, 마지막에 게랑드산 꽃소금을 얹었다는 것이다. 그는 푸아그라를 먹으며 살짝 씹히는 소금의 맛을 샴페인과 함께 느껴 보라고 조언했다. 담백하고 고소하게 녹아드는 푸아그라와 싸한 샴페인 한 모금, 그리고 짭짜름하게 와인과 음식 사이의 간을 넘나들던 소금의 씹힘. 사실 그동안 차고 뜨거운 다양한 요리법의 푸아그라를 맛 보았어도 이렇듯 재료의 순수한 맛이 살아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요리 마지막 단계의 선택, 소금. 와인 맛을 살려주는 확실한 미감이었다면!
#셋, 서해안의 소금 맛
한국 서해안은 천혜의 ‘소금창고’다. 바닷물이 들락날락하는 강화, 태안, 부안, 신안 등은 예로부터 기가 막힌 염전이었다. 밀물 때 들어온 바닷물을 가두어 수분을 증발시키면서 높이가 낮은 쪽으로 차례차례 내려보내, 마지막 바닥을 고무래로 긁으면 그게 바로 천일염이다. 알갱이 몇 알 입에 넣으면 짜지만 달던, 한 움큼 집었다 놓으면 바삭바삭 떨어지던 그 양질의 소금을 어찌 쓴 수입 소금과 비교할까. 옛 어른들은 그중에서 오월소금을 최고로 쳤다. 이 검고 굵은 막소금은 김장은 물론 장을 담그고 생선 구울 때 툭툭 던져 넣었으며, 각종 음식간으로 유용했다. 프랑스인들이 와인을 거론할 때마다 ‘테루아’를 강조하듯 서해 소금밭은 갯벌이 주는 지구상에서 드문 테루아인 셈이다. 그 비근한 예로 뉴욕에서는 내로라하는 요리사들이 몇 해 전부터 맛의 본질인 ‘좋은 소금 찾아’ 이색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한데 그들이 최고라고 구해온 것은 놀랍게도 한국에서 김장 담글 때 쓰는 ‘막소금’형 이라는데….
#다섯, 소금맛 그리고 와인
그럼 와인에서 짠 맛이 느껴진다면? 밸런스가 깨진 것이다. 물론 테루아의 영향은 있다. 실제로 남프랑스 미네르부아 와인에서 짠맛이 느껴졌고, 와인너리 오너에게 질문을 하니 그 옛날 이 곳 토양이 바다 속에 잠겼던 사실을 이야기하며 테루아를 강조했다. 와인에서 짠맛은 치명적이기 때문에 ‘미네랄 향취’로 애써 달리 설명하던 모습이 선하다.
또 하나. 술 중에서 왜 와인은 유별나게 음식과 조화를 따질까. 이는 요리 한 접시도 미학을 따지는 프랑스인들의 까다로운 미식문화 영향으로 보인다. 명품 와인을 만들어낸 고집처럼 음식과 곁들이며 완벽한 마리아주를 고민하지 않았을까. 또 술을 ‘식탁 위’로 끌어올려 금주주의자들과 맞섰던 와인 생산자들의 노력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술을 술이 아닌 음식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어쨌거나 와인은 음식과 함께할 때, 특히 와인이 생산된 산지 요리와 함께할 때 입안에 평화가 찾아온다. 식탁 위 와인 곁에 놓여 마지막 음식맛을 결정짓는 촉매제 소금. 주말에는 와인 한 병 싸들고 비금도 소금밭이라도 둘러봐야겠다. 김장용 소금 한 자루 사고, 폭 삭은 젓갈도 두어 병 사고, 그 막소금 툭툭 끼얹은 생선이라도 한판 구우면서 알싸한 찬바람을 느껴봐야 하지 않겠나.
〈손현주 http://blog.naver.com/marr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