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시래기

솔직히 겉모습은 영 볼품이 없다. 초라하다 못해 궁상맞게 보인다. 배가 고파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눈길을 주지 않았다.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는 집에서나 먹는 음식으로 박대(?)를 받았다. 무청 시래기를 말한다. 무청은 무 뿌리를 수확하고 남은 잎과 줄기다. 이 무청을 새끼 등으로 엮어 말린 것이 무청 시래기다.

▼늦가을 볕에 잘 말린 무청 시래기는 혹독한 한겨울을 버텨낼 식량이었다. 조상들은 온 땅이 꽁꽁 얼어붙어 채소를 구할 수 없게 되면 말려 두었던 이 놈으로 모자란 양식을 대신했다. 겨우내 주린 배를 채워주는 유용한 구황(救荒) 식품이었다. 국, 나물, 죽, 찌개 등으로 만들어 힘(?)이 필요한 가족에게 주었다. 물론 쓰레기와는 상관이 없다. 발음이 비슷해서 애꿎게 누명을 쓴 것뿐이다. 우거지와도 구별된다. 이것은 배추 등 채소의 겉부분 또는 윗부분을 걷어낸 것이다.

▼시래기는 곤궁한 시절 선조들이 개발한 과학적인 영양 만점의 요리다. 비타민 A, C, B1, B2, 칼슘 등이 풍부하다. 특히 구수하고 깊은 맛이 일품이다. 시래기는 오래 푹 삶아 찬물에 우렸다가 각종 반찬으로 조리해 먹는다. 시래기 된장국 한 그릇이면 추위에 언 몸이 훈훈해진다. 한 번 입 안에 들어오면 부드러운 촉감에 숟가락을 놓지 못한다. 중·장년들은 이 아스라한 옛 맛을 못 잊는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이 맛을 모르고 자란다.

▼김장철이다. 농어촌 들녘마다 무 밭에서 차가운 바람에 시래기를 말리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다. 깊은 계곡에서 황태를 말리는 광경과 비슷하다. 한겨울 눈밭에서 모진 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인고(忍苦)의 작업과 다르지 않다. 민통선 북방지역 양구군 해안면에서 ‘펀치볼 시래기축제’가 지난 중순에 열렸다. 어린 시절 그 맛이 그리워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요즘에는 지방 특산물로 시래기를 대량 생산해 소득을 올리는 농촌마을도 많다.
버려졌던 시래기가 건강식품으로 부활했다. 겉맛으로 혀만 유혹하는 요즘의 잘난(?) 요리에 대한 멋진 반격이다.

조광래논설실장·krcho@kwnews.co.kr


[강원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