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만 키울 수 있다면” 초경 늦추기 ‘위험한 母情’


주부 박모씨(39·대전 탄방동)는 얼마전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이 키가 120㎝인 상태에서 초경 조짐을 보이자 한의원에서 운영하는 성장 클리닉을 찾았다. 초경을 늦춰 키를 키울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서다.



김씨는 한의사로부터 특수처방한 한약을 먹이면 1년 정도 생리를 늦추고 키도 크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약값은 한 달에 30만~35만원. 1년간 복용해야 한다고 했다. 김씨는 한의원을 돌아나왔다. 약값도 고가지만 과연 효과가 있을지 긴가민가해서다.

‘얼짱’ ‘몸짱’ 등 외모 중시 세태속에 여자 아이의 키를 크게 하기 위한 ‘초경 늦추기’가 유행이다. 일부 부모들의 극성과 병·의원, 한의원의 상혼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

서울 서초구 ㅎ한의원. 인터넷 홈페이지에 139.1㎝였던 이모양(12)에게 여성 호르몬을 낮추는 치료를 실시했고 1년 반 만에 키를 10여㎝ 키웠다며 치료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놓고 있다. 상담사례에는 ‘초경을 하면 키가 크지 않을 수 있으니 호르몬 요법과 탕약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키성장 전문’이라는 강남구의 ㅇ한의원도 마찬가지. ‘또래보다 키가 매우 작은 상태거나 초경이 너무 일찍 시작되면 충분히 크지 못하고 성장판이 닫힌다’ ‘여학생은 초등학교 1~3학년 정도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고 광고하고 있다.

한의원에서는 비만(체지방)을 줄이는 약재와 혈열을 식히는 약재 등을 써서 초경을 늦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비만이 초경을 빨리 불러온다는 점과 맥에 혈열이 있으면 초경이 임박한 것으로 보는 것에 근거한 것이다.

병·의원에서는 성장자극 호르몬 억제제를 활용해 여자 아이의 초경을 늦추는 처방을 하고 있다. 치료비는 한의원과 별 차이가 없다.

‘초경 이후엔 키가 자라지 않는다’는 속설이 퍼지면서 딸아이의 초경시기를 1~2년씩 억지로 늦추려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사실은 어떨까. 많은 전문가들은 “초경이 시작됐다고 반드시 성장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라며 인위적인 ‘초경 늦추기’의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김상범 한의학 박사는 “자연스러운 성장주기에 초경이 오는 것을 막으려다 보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므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아이들의 경우는 운동과 좋은 영양섭취 등을 통해 키를 크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한의사 오용진씨는 “초경을 늦추기 위해 율무·인진쑥·오가피·마황 등의 약재를 써서 비만을 줄이고 혈열을 낮추는 등의 처방을 할 수 있다”며 “그러나 초경을 실제로 얼마나 늦출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검증이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이런 것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충남대 의대 전병화 교수는 “성장 호르몬 등을 잘못 사용하면 자칫 말단비대증 또는 암 등의 심각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윤희일·김다슬기자 yhi@kyunghyang.com〉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