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생활 서구화가 가져온 재앙 '크론병'

【서울=메디컬투데이/뉴시스】


20대 중반인 이상훈 씨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반복적으로 설사를 하는 크론병과 싸워왔다.


그동안 크론병에 좋다는 쑥이나 자연식품을 섭취하는 등 별의별 방법을 동원해 봤지만 별다른 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던 이씨.


이씨는 장에 생긴 염증부위를 제거하는 수술을 3번이나 받고 나서야 어느 정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졌다. 이런 이씨에게 최근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이씨는 “예전에는 크론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요즘에는 꽤 많아졌다”며 “20년 지기 친구조차 크론병이라는 소리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 ‘크론병’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크론병은 아직까지 뚜렷하게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희귀병으로 입에서부터 항문까지 소화기관에 만성적인 염증이 발생해 복통, 구토, 설사가 지속된다.


특히 10~20대 젊은층 사이에서 크론병 진단을 받은 환자가 늘면서 발병원인과 치료방법이 주목을 받고 있다.


영남대병원 소화기내과 장병익 교수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크론병 발생률이 80년대 후반에는 0.02명이었는데 2001년 말에는 5.3명으로 급증했다.


1999년에는 총 1000명에 불과했던 크론병 환자가 지난 2005년에는 4000~4500명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그만큼 크론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현재까지 크론병이 발생하는데 유전적, 환경적, 명역학적 요인 등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가설이 난무할 뿐, 발병원인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 근본적인 치료법은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크론병으로 진단받은 사람들이 늘면서 유전적인 요인 외에 환경적인 영향을 받아 크론병이 생긴다는 논리가 지지를 받고 있다.


장병익 교수는 “크론병은 서구에서 많이 발생해 선진국형 질병으로 인식돼 왔지만, 국내에서도 19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특히 “패스트푸드를 중심으로 한 식생활이 서구화되면서 크론병이 많이 나타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크론병을 ‘식생활의 서구화가 가져온 재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호주에서 발표된 연구결과에 의하면 크론병 진단을 받은 어린이 환자 중 절반 가량이 소장, 대장 등 소화기관에서 냉동온도에서도 번식하는 특정 세균(MAP)이 발견됐다.


일반적으로 식품을 만든 뒤 먹을 때까지 냉장냉동 보관할 때 이 세균이 식품을 상하게 만들고 이를 섭취한 사람에게 크론병 발병률을 높인다는 주장이다.


◇ 난치성 질환으로 환자 고통만 가중


크론병은 장이 찢어지는 것처럼 심한 복통이 나타나면서 만성적으로 설사를 하고, 이에 따라 영양소 흡수가 되지 않아 체중이 줄어드는 3가지 증상이 나온다.


장 교수는 “크론병이 가장 잘 발생하는 시기가 20대 초반”이라며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젊은데 무슨 병이 있겠거니 하면서 크론병을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고 우려했다.


즉 젊은 사람이더라도 반복적으로 설사, 복통 등이 발생하면 크론병을 의심해 봐야 한다는 말이다. 단순히 심한 복통으로 과민성 장증후군, 장결핵, 충수염, 거식증 등으로 오인해서는 상태가 악화되기 때문이다.


흔히 크론병은 만성 염증성 장질환을 일으키는 궤양성 대장염과 혼동되기도 한다.


하지만 두 질병은 발생하는 원리는 비슷하지만 나타나는 증상이 다르기 때문에 대장내시경으로 검사하면 특징적인 소견이 보여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크론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염증이 생긴 부위를 잘라내는 수술방법과 염증을 억제, 제거하는 약물이 사용된다.


일단 염증이 생긴 장을 절개하면 수술 후 장의 통로가 좁아져 음식물 덩어리로 막힐 수 있기 때문에 3~4년에 1번씩 재수술을 받아야 하는 부작용이 있다. 반면 크론병 환자 대부분은 수술적 방법을 최후의 선택으로 남겨 놓고 있어 수술을 받은 사람들보다 상태가 좋지 않다.


염증을 억제하는 항염증약물이나 면역억제제는 크론병의 치료에서 일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반면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항염증약물의 경우 속의 메스꺼움을 가져오며, 면역억제제가 사용됐을 때에는 백혈구 수치를 줄여 다른 감염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


최근에는 레미케이드라는 새로운 치료제가 각광을 받고 있다. 일종의 진통제로 크론병의 염증을 제거하고 복통을 경감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렇지만 이마저도 비용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크론병 환자들의 고통은 더해만 가고 있다.


이상훈씨는 “2달마다 구입하는 레미케이드에만 200~300만원을 쓰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이 크다”며 “크론병 자체가 음식물을 먹지 않으면 문제가 없지만 현실적으로 병원에서 링겔만 맞고 살 수는 없지 않느냐”고 호소했다.


윤주애 기자 yjua@md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