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세의 Stress-free] 만성스트레스는 심한 건망증 초래


“치매는 아니겠지요? 내참, 이럴 수가 없어. 냉장고에 전화를 두고 찾는다는 이야기가 그냥 웃으라고 한 이야긴 줄 알았어요. 야, 이거 스트레스 만만히 볼 것이 아닌데요.”

증권회사 중견간부인 한 남성이 건망증으로 상담을 왔습니다. 정상적인 노화의 과정으로도 건망증이 올 수 있습니다. 스무 살이 넘어서면 기억력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마흔이 넘으면 현저히 감퇴하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젊은 시절에는 거래소 모든 종목의 종가를 기억할 정도로 출중한 기억력을 갖고 계셨다는 마흔 초반 남성치고는 건망증이 너무 심각합니다.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있다가 두 장 전 슬라이드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것은 약과랍니다. 이미 결제 받은 서류를 깜빡 잊고 또 결제 받으러 사장실에 두 번 들어가기까지 했으니까요. 아주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지요. 덕분에 주위 사람들이, 기억력 하나는 최고라던 그를 ‘한물간’ 사람 취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쯤 되면 ‘사오정’의 위협이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물론 최근에는 온 국민이 다 스트레스에 빠져 살기는 하지만, 증권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지요. 교통사고나 뇌졸중으로 뇌를 다친 것도 아니고, 술에 절어 ‘알코올성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도 아니고, 심한 우울병이나 불안병으로 뇌기능이 떨어진 것도 아니니, 본인 말대로 스트레스 때문이 맞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건망증이 생기고, 건망증 때문에 다시 스트레스 받고, 악순환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런데 의문이 생깁니다. 제 경우에 ‘김진세 박사의 Stress-free’ 칼럼을 쓰다 보면, 마감 하루 전날 조급한 마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잘 써집니다. 기억력이 훨씬 좋아진 느낌이 들곤 합니다. 아마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 일겁니다. 왜, 시험 전 날 ‘벼락치기’ 잘하는 사람들이 성적은 좋잖아요. 심하면, ‘분치기’, ‘초치기’도 하고요. 기억력과 스트레스에 관한 많은 연구결과를 보아도, 스트레스를 약간 받는 편이 그렇지 못한 경우보다 기억력이 훨씬 좋습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기억력이 좋아진다니, 앞뒤가 안 맞는 말이지요. 이유가 있습니다. 스트레스의 종류에 따라 달라집니다. 급성이면서 중등도 이하의 스트레스는 ‘교감신경계의 항진’과 ‘스트레스 호르몬(글루코코티코이드)의 분비’ 그리고 ‘예민해진 감각 신경’ 덕분에 기억력이 좋아집니다.

그렇다면 스트레스가 지속되어 만성이 되면 어떨까요.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치매는 아니더라도, 심한 건망증에 시달리는 원인이지요. 만성 스트레스로 뇌신경이 작용을 못하고, 뇌신경회로가 망가지고, 새로운 신경세포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기억중추가 망가지는 과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마치 바다 생물인 ‘해마(海馬)’와 닮아서 해마라고 불리는, 기억과정의 중심 뇌기관이 작아지기도 합니다.

일 못하면 바로 쫓겨나가는 험악한 분위기. 이런 분위기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면, 건망증은 곧 회사를 떠날 수 밖에 없다는 ‘치명적 증상’입니다. 기억력을 되살리는 법은 없냐고요? 있습니다. 원칙을 생각하세요. 적당한 수면은 뇌세포를 쉬게 하여 뇌의 기억 저장능력을 복원해줍니다. 세 끼 영양 잡힌 식사는 기억과정에서 뇌가 쓸 영양분 공급에 필수적이고, 오히려 지나친 다이어트는 기억력을 떨어뜨립니다. 담배와 지나친 음주는 뇌혈류량을 줄이고 산화물질을 배출해서 뇌세포를 괴롭히니 피해야 합니다. 또한 메모하는 습관과 뇌를 쓰는 작업도 병행해야 합니다. 뇌를 쓰는 작업으로는 외국어 공부가 도움이 되고, 미술과 음악 활동도 기억력을 향상 시키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 관리는 필수라는 것, 이젠 말씀 안 드려도 아시지요!

/고려제일신경정신과 원장(drmeso@naver.com)

[파이낸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