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야채 샐러드의 신화를 버려라!
/김수현 생명치유아카데미 원장
양상추,샐러리,치커리와 같이 서양 샐러드 채소들은 먹을 때 입 안 가득 상쾌함을 준다. 그 아삭한 채소의 맛을 즐기기도 하지만 달콤하고도 독특한 소스의 맛도 잊지 못한다. 하지만 샐러드 채소 한 접시를 통해 먹을 수 있는 양은 하루 150g 정도로 하루 섭취해야 하는 채소의 양의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흰밥에 흑미나 잡곡 조금 넣어 까맣게 물들여 먹으면서 잡곡밥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샐러드 채소 한 접시 먹으면서 충분히 채소를 섭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샐러드 채소들은 90% 이상이 수분으로 비타민,미네랄,엽록소,섬유질 등을 비롯해 채소를 통해 섭취해야 하는 영양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샐러드 채소가 상큼하게 느껴지는 것도 수분 함량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비타민과 섬유질의 함량은 우리나라 전통적인 채소나 나물 등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타민과 대부분의 영양소가 열에 의해 파괴되는 줄로만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채소는 생으로 먹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샐러드 채소는 상대적으로 질기고 고유의 향이 짙은 전통 채소에 비해 상쾌하고,샐러드 채소를 먹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인식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조상들은 생채와 숙채를 함께 즐겨왔다. 채소는 살짝 데치거나 삶게 되면 부피가 줄어 많은 양의 채소를 먹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채소와 나물의 비타민은 아주 단단한 식물 세포벽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가열을 했을 때 훨씬 더 많은 비타민이 용출된다. 이로 인해 더 많은 양의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다. 식물 세포벽을 이루고 있는 셀룰로오스 같은 섬유질은 열에 의해 용해되거나 발효과정에서 미생물에 의해 분해된다. 이렇게 채소에 열을 가하게 되면 세포벽의 성질이 변하게 되고,세포 안에 갖혀 있던 영양소가 흘러나와 신체 내에서 흡수되고 이용되기 쉬운 형태로 전환된다. 결국 채소를 익혀 먹거나 삶아서 국물을 함께 먹었을 때 훨씬 더 많은 양의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된장찌개도 아주 좋은 음식이지만 된장찌개에 몇 가지의 채소를 첨가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식품이 되어 버릴 수 있다.
예전부터 배추 시래기나 무청을 갈무리 할 때면 한번 살짝 데쳐 그늘에 말렸다가 겨우내 두고 비타민과 영양을 보충하는 소중한 식품으로 이용해 왔다. 모든 식품의 영양은 열에 의해 파괴되는 것이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채소를 오래 보관해서 두고 먹게 되면 자체 내의 효소에 의해 영양소의 파괴가 지속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효소는 영양의 파괴,영양소의 화학 반응을 촉진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양의 영양소가 소모된다. 그렇기 때문에 갓 따낸 신선한 채소가 영양 함량이 가장 높을 뿐만 아니라 유통,저장,보관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영양의 함량이 떨어진다. 더더욱 오래 보관해 두고 먹는 채소 같은 경우에는 살짝 데치거나 삶아서 효소를 불활성화시켜서 영양소의 화학 반응을 통한 파괴 과정을 중단시켜야 한다. 효소는 단백질로 되어 있고 섭씨 60도 이상에서 변성되므로 살짝 데치거나 삶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효소의 작용을 막을 수 있다.
또한 가을에 수확한 무는 맛있기도 하지만 채로 썰어서 말렸다가 겨우내 먹곤 하는 무말랭이는 영양뿐만 아니라 면역 증강 물질 또한 증가한 식품이다. 무는 말리는 동안 수분이 증가하면서 영양의 농축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무를 잘라 단면을 늘리게 되면 잘린 단면에서 세포를 복구하기 위한 베타 글루칸이라고 하는 면역 증강 물질이 다량 생성된다. 전통적으로 먹어 왔던 음식들은 모두 과학적으로 검증되어 있지는 않지만 곳곳에 생활의 지혜를 숨기고 있다.
샐러드 채소나 김치를 조금 먹으면서 채소를 충분히 먹고 있다고 안심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곡식의 도정과 식품의 가공,환경의 오염은 현대인에게 더 많은 양의 비타민,미네랄과 같은 미량 영양소와 섬유질,각종 생리활성물질 같이 노폐물을 배설하고 해독하기 위한 영양소를 더 많이 필요로 하고 있다. 충분한 채식 위주의 식단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이 때문에 데치거나 삶아 무쳐낸 산나물,들나물과 같은 전통 채소의 장점은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다.
[부산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