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도우미부터 학교운영위까지… 아빠들의 바짓바람
[문화일보]
(::‘학교 방문은 엄마 일’ 인식 달라져::)“도토리묵을 많이 먹어야 키가 잘 큰다. 많이 먹고 모자라면 얘기들 해.”
19일 낮 양천구 신정3동 신기초등학교 1학년 3반의 점심시간. 아이들이 내민 식판에 음식을 가득 담아주며 일일이 ‘잔소리’까지 얻어주는 급식도우미는 이 반 학생 정모(8) 어린이의 아버지 박해병(42·양천구 신정동)씨다. 올해 새내기 학부모가 된 박씨는 주로 밤에 일을 하기 때문에 직장에 나가는 부인을 대신해서 올해 두번째로 급식도우미로 나섰다. 박씨는 “처음 학교에 갈 때도 어색하기보다 오히려 반가웠다”며 “아들이 학교에서 누구랑 어떻게 공부하고 밥을 먹는지 보고 싶어 당당히 배식에 나섰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아버지들의 아름다운 반란이 일고 있다. ‘학교 방문은 엄마 몫’이라고만 여겼던 딱딱한 아버지가 아니라 자녀들의 급식이나 교통도우미 등으로 참여하는 신세대 아버지가 늘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아버지회가 구성돼 어머니회 못지않은 왕성한 활동으로 ‘바짓바람’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는 자녀교육에 대한 아버지들의 관심이 높아진 탓도 있지만 실직가장이나 아버지가 아이를 혼자 키우는 편부가정이 늘고 있는 씁쓸한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20일 양천구 신월7동 강월초등학교 운동장. 어머니회 주최의 바자회 행사가 한창인 이곳 한쪽에 대나무로 만든 비즈발이 인기를 끌었다. 비즈발은 아버지들이 직접 만든 것. 아버지회에서는 이날 판매할 비즈발을 만들기 위해 직접 동대문시장에서 대나무재료를 사왔다. 30여명의 아버지가 한달 전부터 퇴근후 조별로 모여 한올 한올 엮어 100개 가까이 만든 것이다. 아버지회 정도영(43·양천구 신월동) 회장은 “작년 바자회에서는 600만원의 수익을 올려 학생 책걸상 일부를 새것으로 바꿔주었다”며 “아버지회가 단순히 술 한잔 하는 모임이라고 생각하면 오해”라고 말했다.
노원구 중계동 원광초등학교의 아버지회는 지난 11일 밤 스승의 날을 기념해 선생님들을 위한 깜짝 이벤트를 펼쳤다. 20여명의 아버지가 10시가 넘은 밤에 27개 학급을 돌며 교실 출입구에 카네이션 장식을 붙이고 거기에 일일이 감사의 마음을 글로 적은 카드를 꽂아둔 것이다. 아버지회는 이같은 깜짝 이벤트뿐만 아니라 선생님과 함께하는 등산대회, 갯벌 체험학습 등 행사를 마련하며 어머니회가 할 수 없는 일들을 외조하고 있다. 류갑선(44·노원구 중계동)씨는 “아버지들이 학교행사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자녀들과 친밀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부부 사이도 더욱 신뢰감이 높아지는 것 같다”고 자랑했다.
학교운영위원회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다. 공병길 은로초등학교 운영위원은 “현재 학운위의 학부모위원이 6명인데 이중 2명이 어머니고 4명은 아버지”라며 “운영위를 만들고 나서 아버지가 더 많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인천의 J초등학교 신모 교사는 “요즘 학생들의 알림장도 아버지가 확인해주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며 “이들 대부분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거나 실직 후 가사를 도맡고 있는 아버지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