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탄수화물이 비만 원인” NYT 보도 뜨거운 논쟁
육류냐! 곡류냐! 비만의 주범은 누구?
스테이크와 파스타 중 어떤 게 건강에 좋을까.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1984년부터 2세 이상 모든 미국인에게 ‘저(低)지방식’을 권장해 왔다. 비만과 심장질환이 폭증한 것도 모두 ‘스테이크’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최근 비만 등은 스테이크나 치즈버거 같은 지방 때문이 아니라 파스타나 밥과 같은 탄수화물(당분)의 과도한 섭취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워싱턴포스트지(8월 27일자)는 “미국인들은 이제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다”고 보도했다.
소용돌이의 진원(震源)은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7월호 커버 스토리 기사. 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게리 타뷰스씨는 “건강에 좋다고 여겼던 곡류(탄수화물)의 지나친 섭취가 미국인의 비만을 심화시켰다”고 주장했다. 잡지가 발매되자 고기만 먹으면 살이 빠진다는 아킨스 박사의 저서 ‘아킨스 다이어트 혁명’은 ‘아마존(인터넷 서점)’ 판매 순위 178위에서 5위로 수직 상승했고, 타임스지는 이 책을 추천도서목록 1위에 올려 놓았다. 의학자, 영양학자들 간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 것은 물론이다.
▲스테이크와 파스타 =안심 스테이크 1인분(200g)에는 약 40g의 단백질과 20g의 지방이 들어 있다. 나머지는 수분 등이다. 단백질과 탄수화물은 1g당 4㎉, 지방은 1g당 9㎉의 열량을 낸다. 따라서 스테이크 1인분의 열량은 약 340㎉다. 파스타 1인분(300g)에는 14g의 단백질과 73g의 탄수화물이 있어 모두 370㎉다. 주(主) 메뉴만 따진다면 스테이크가 파스타보다 몸매 관리에 더 유리하다.
살이 찌는 것은 섭취한 열량의 총합과 비례한다. 타뷰스씨는 그러나 음식의 종류도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육류는 조금만 먹어도 포만감이 들지만, 곡류는 많이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아 과식하기 쉽고 결국 살이 쉽게 찐다는 것이다.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이풍렬 교수는 “단백질과 지방이 많은 육류는 소화되는 시간이 오래 걸려 포만감을 주지만, 탄수화물이 대부분인 곡류는 먹는 즉시 당(糖)으로 바뀌어 에너지로 사용되므로 상대적으로 공복감을 느끼기 쉽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임상영양과 강은희 과장은 “따라서 살 뺀다고 점심 때 국수를 먹은 뒤 허기져 오후에 군것질을 한다면 든든하게 갈비탕을 먹은 것만 못하다”고 말했다.
▲아랫배(체지방)가 나오는 이유 =체지방이 늘어나는 건 고기(동물성 지방)를 많이 먹었기 때문일까?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지방이 거의 없는 밥이나 국수도 체지방 축적의 원인이 된다. 탄수화물은 소화 즉시 당으로 분해돼 에너지원으로 사용되지만, 에너지원으로 쓰이고 남은 당의 일부는 간과 근육에 ‘글리코겐’이란 형태로 저장되며, 나머지는 지방으로 바뀌어 아랫배 등 체지방에 저장된다. 근육 등을 구성하는 단백질도 소화되면 아미노산으로 바뀌지만, 여분의 아미노산은 역시 지방으로 변해 체지방에 축적된다. 결국 어떤 영양소든 과도하게 섭취하면 지방으로 바뀌어 아랫배를 나오게 한다.
강은희 과장은 “몸매 관리를 위해선 음식의 종류보다 음식의 양, 즉 총 열량 섭취를 줄여야 하며, 열량은 탄수화물을 통해 65%, 지방과 단백질을 통해 각 20%와 15%의 열량을 얻도록 조정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동물성 지방과 심장병 =고기를 많이 먹으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라가고 심장병 위험도 높아진다는 것은 기본적인 건강상식.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박영배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 총 콜레스테롤 수치는 1960년대에 160, 1970년대에 170, 1980년대에 180, 1990년대에 190 정도로 꾸준히 증가했으며, 심장병 발병도 비례해 늘었다”며 “이 같은 현상은 육식 위주로의 식생활 변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전문의들이 저지방식을 권고하는 이유는 지방섭취가 계속 증가하는 이 같은 ‘경향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심장병이 생기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며, 저지방식이 모든 사람의 심장병을 예방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홍원선 교수는 “우리나라 심장병 환자의 상당수는 고기가 아닌 밥을 많이 먹었기 때문에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진 것”이라며 “특히 중성지방이 높은 사람은 육류보다 곡류 섭취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임호준기자 hjlim@chosun.com )
[조선일보] 2002.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