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식증, 신경성으로 생긴 ‘정신질환’

몇해 전 개봉됐던 ‘301-302’란 제목의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거식증 증상을 보
이는 황신혜와 대식증을 보이는 방은진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어릴 때 의붓아버지로
부터 성폭행 당한 후유증으로 몸 속이 더럽다며 음식을 거부하는 301호 주인, 요리
취미를 갖고 있으나 남편으로부터 이혼당한 채 이사와 음식을 거부하는 옆집 여자에
게 오기로 음식을 먹이겠다는 302호 주인에 얽힌 이야기다.

거식증(또는 대식증)은 영화로 만들어질만큼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하지만 ‘다이어트
를 심하게 하면 거식증에 걸린다’는 등의 속설도 많다. 강남성모병원 정신과 이창
욱 교수를 찾은 최모(21·여)씨의 상담을 통해 거식증을 포함한 ‘식사장애’에 대
해 알아본다. ( 편집자 )

“선생님 다이어트를 심하게 하면 거식증에 걸려요?”

이 교수는 “그렇지 않습니다. 의학적으로는 신경성 식욕부진증으로 부르는 거식증
은 하나의 정신질환”이라고 말했다. 그는 “거식증은 다이어트를 한다고 해서 생기
는 것은 아니며 유전적 소인, 심리적, 사회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생기
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사회적 요인이란 날씬함을 선호하는 분위기로 볼 수 있
다. 즉 유전적인 거식증 소인이 있어도 날씬한게 매력적이란 지나친 스트레스에 노출
되지 않았으면, 거식증을 일으키지 않았을 사람도 최근의 사회 분위기 때문에 심각
한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거식증 환자들은 음식을 거부하고, 현저한 체중감소 등의 증상을 보이기 때문에 심
하게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과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정확히 구별하기는 쉽
지 않습니다.”

이 교수는 “그렇지만 심한 다이어트와 거식증을 구별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있
다”고 말했다.

우선 거식증은 체중이 정상 때보다 15% 이상 빠진다. 또 우울증, 성격장애, 3회 이
상의 무월경 등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이미
지가 심하게 왜곡돼 있는 것. 체중이 30㎏에도 못미치면서 자신이 뚱뚱하다고 생각한
다. 음식과 관련한 특이한 버릇도 보여준다. 음식을 옷장이나 책상 서랍 속에 숨겨
놓는 환자들도 있으며, 먹으라고 준 빵을 지갑에 넣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 어떤 환
자는 옷장 속에 밥그릇을 숨겨놨다가 부모에게 들켜 병원을 찾기도 했다. 거식증 환
자는 식욕은 정상이면서 자신이 뚱뚱하다고 생각해 먹지 않는다.

청소년기 소녀의 거식증 발병률은 0.5~1%, 여자가 남자보다 10~20배 높다. 많이 발
생하는 연령대는 10대 중반으로 주로 17,18세가 많지만 5%는 20대 초반에 발생한
다.

거식증 환자들은 조기 발견이 어려워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응급상황인 경우가 대부분이
다. 거식증은 치료가 까다롭다. 치료를 해도 재발이 잘되며, 심각한 경우 사망율이
5~18%에 이를 정도이다.

거식증과 정반대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비슷한 맥락을 가진 것이 대식증(신경성 과식
욕증). 많은 음식을 빨리 먹으며 복통과 구역질이 날 때까지 먹고 토하고 죄책감, 자
기혐오, 우울증 등으로 괴로워한다. 일부러 토하기 위해 약을 먹기도 하며, 설사
제, 이뇨제를 상습적으로 복용하기도 한다.

대식증은 거식증보다 흔한 편인데, 다이어트와도 상당히 관련이 있다. 주로 10대 후
반, 20대 초반의 여성에게 발병한다. 미국 연구를 보면 유병률은 대학생의 3~20%로
돼 있으며, 국내에서는 20세 전후의 대학생의 유병률이 0.8%로 나와 있다.

대식증 환자들은 약간 뚱뚱하거나, 정상 체중을 갖고 있다. 전형적인 특징은 부드럽
고 달고 칼로리가 많은 음식을 평균 1시간 이상 몰래 숨어서 게걸스럽게 먹는 것이
다. 먹고 난 뒤에는 손가락을 목구멍에 넣어 토하며, 이로 인해 치아와 손 등에 상처
를 입기도 한다. 대식증은 거식증보다는 치료 결과가 좋은 편이며, 1~2년 안에 자
연 치유될 수도 있다.

[조선일보] 2001. 6. 7

( 임형균기자 hyim@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