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생식, 무조건 좋기만 한가…허와 실 분석
늦잠 때문에 아침을 굶기 일쑤인 회사원 신모(32·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씨는 최근 친지에게 “건강을 위한 영양소가 모두 모였다”는 귀띔과 함께 가루 생식 1상자를 선물 받았다. 마침 직장 동료가 “하루 세끼를 모두 생식으로 대체해 운동을 하지 않고도 두 달에 12㎏을 뺐다”고 자랑하는 것을 들은 터라, ‘내친김에 생식이나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쉽사리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의 궁금증은 크게 네 가지.
“생식으로 다이어트가 될까?”
생식 한끼 분의 칼로리는 200㎉ 안팎으로, 비빔밥·갈비탕·된장찌개 등 평상식(600~700㎉)보다 적다. 하루 필요 칼로리(성인 남자2500㎉·여자 2000㎉)보다 적게 먹으면 인체는 몸에 축적된 지방을 꺼내 에너지로 쓴다. 따라서 하루 한 끼 생식을 먹으면 1주일에 500g 정도 감량할 수 있다. 무작정 굶는 것보다 공복감이 적어 군것질을 줄일 수 있고, 채소의 비타민과 통곡식의 효소 등 몸에 좋은 영양분을 보충할 수 있어 좋지만, 원리 자체는 ‘적게 먹어 살을 뺀다’는 것이라는 게 의학계의 정설이다.
“그래도 생식을 하면 몸이 가뿐해진다는데?”
평소 고기와 술을 잔뜩 먹던 사람이 생식을 하면 위의 부담이 줄어 몸이 가벼운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칼로리가 적어 다이어트 효과가 있고, 통곡식의 씨눈에 들어있는 효소나 채소의 비타민처럼 평소 잘 섭취하지 않던 영양소를 먹게 되므로 몸에도 좋다. 실제로 생식이 당뇨와 관상동맥경화증에 도움이 된다는 보고도 있다.
연세대 노화과학연구소는 지난해 관상동맥경화증 환자 38명(당뇨병 환자 12명 포함)에게 16주간 아침 대신 생식을 먹도록 처방한 결과, 당뇨병 환자의 공복혈당이 27% 줄고 동맥경화증 환자도 차도를 보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발 더 나아가 “생식으로 암을 고친다”는 이야기까지 맹신해선 곤란하다. 생식은 현대인의 고칼로리 식사를 균형 잡는 수많은 섭생법 중 하나일 뿐 질병치료 효과는 의학적으로 검증된 바 없다는 것이다. 꼭 생식을 하지 않아도 하루 세끼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채소 섭취량을 늘리면 똑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한방에서도 마찬가지. 고기를 지나치게 많이 먹어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가 높아지고 혈관벽이 좁아진 증상을 한방에서는 “피가 뜨겁다” “피가 탁하다”고 표현하는데, 적절한 생식은 이런 증상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고기 등 다른 음식을 전혀 먹지 않고 생식만 하면 오히려 몸의 균형이 깨져 해롭다고 한다.
“업무상 회식과 야근이 잦은데, 생식으로 버틸 수 있을까?”
하루 한끼라면 괜찮지만, 하루 세끼를 모두 생식으로 대체하는 것은 좋지 않다. 속세에서 벗어난 요양원에서 오직 체조와 섭생만 신경 쓰며 산다면 몰라도 활동량이 많은 직장인에겐 무리이다. 하루 필요 칼로리의 3분의 2는 숨쉬고 잠자고 소화하는 기초대사에 소모된다. 저칼로리 식사를 장기간 계속하면 기초대사율과 활동력이 떨어지고, 영양실조에 걸릴 수 있다. 살이 빠져도 날씬해지는게 아니라 앙상해진다. 20대 여성이 “몸에 좋다”는 생식업체 선전만 믿고 6개월간 하루 세끼 생식만 먹다 머리카락이 모두 빠진 사례도 있다.
“생식을 해선 안 되는 사람이 있나요?”
생식 다이어트는 평소 고기와 술을 즐겨 뱃살이 찐 사람이 하루 한끼 일반식을 대체하는 정도가 딱 알맞다고 한다. 성장기의 청소년, 위장이 나쁘거나 몸이 찬 사람에겐 해롭다.
생식을 시작한 뒤 두통·피부 발진·어지럼증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체질이 좋아지는 증거”라고 하지만, 양·한방 어느쪽에서도 검증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생식을 시작한 뒤 2~3일 동안 부작용이 사라지지 않으면 즉시 1~2일간 생식을 쉬어야 한다고 했다. 다시 시작해도 같은 반응이라면 하지 말아야 한다.
(김수혜기자 goodluck@chosun.com )
<도움말=김상우·분당차한방병원 부원장, 김원호·연세의대 교수, 김진옥·삼성서울병원 임상영양실장, 이경섭·강남경희한방병원장, 이종호·연세대 노화과학연구소 부소장, 이형구·경희대 한방병원 교수, 전세일·포천중문의대 대체의학대학원장, 홍원선·서울아산병원 교수>
[조선일보] 2002.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