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박사의 음식이야기/ 차(茶)
누구나 잠 한번 푹 자는 게 소원이었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의과대학 다닐
때 하루 3과목씩 열흘 연속으로 학기말 시험볼 때와 인턴·레지던트 시절 중환자실 근
무할 때 잠자는 게 소원이었던 기억이 난다. 군대처럼 규율이 센 의사 수련시절에 선
배 의사가 “오늘 밤 이 환자 잘 봐”라 하고 퇴근하면, 밤새 꼬박 환자 옆에서 혈압
등 상태를 점검해야 했다. 그 당시 잠을 쫓으려고 커피를 많이 먹기 시작했는데, 하
루 5~6잔은 보통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오후에 커피 한잔만 마셔도 밤에 잠
을 못자고, 가슴이 뛰는 증상이 생겨 요즈음에는 카페인 성분이 상대적으로 적은 녹차
를 마시곤 한다.
‘차 소비량이 많으면 동맥경화성 심장병과 일부 암의 발생이 줄어든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지만, 뚜렷한 과학적인 근거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최근 미국 보스턴 대학 심장내과의 연구에 따르면, 협심증 환자에게 홍차를 먹게 하
면 홍차에 있는 ‘카테킨’ 성분 때문에 2시간 내에 혈관의 내피세포기능이 호전돼 혈
관이 확장되며, 이런 효과는 차를 마실 때마다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물이
나 카페인을 마시게 한 환자에서는 이러한 효과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혈관 내피세포는 혈관 안쪽 벽을 둘러싸고 있는 세포로, 이것이 손상되면 동맥경화가
진행되고 피떡(혈전)이 잘 엉겨 붙어 혈관이 쉽게 막히게 된다.
네덜란드 국립보건성의 연구에서도 차를 규칙적으로 15년간 마시게 한 환자는 심장병
으로 인한 사망률이 20%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홍차에는 양파에도 있는 ‘퀘르
세틴’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어 협심증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데, 특히 여성들에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일본의 시즈오카 현은 녹차 소비율이 높은데, 위
암 발생율이 일본 평균의 1/4밖에 되질 않는다. 녹차, 홍차, 아이스 티 모두가 이런
효과가 있고, 많이 가공한 것보다는 잎채로 된 차가 더 좋다.
( 오동주·고대구로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
[조선일보] 2001. 10. 18